어쩌다 누군가 '유교구신론' 풀어쓴 본이 없느냐고 물어봐서 찾아보다가 못 찾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냥 한가한 소일삼아 중간에 자세한 이야기 빼고는 (상당히 형편없이) 의역...도 아니고 그냥 국한문 혼용인 걸 풀어다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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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및 줄 바꿈은 내가 임의로 한 것)

유교 구신론

겸곡생(박은식)

무릇 우리 동양 수천년 교화계에 중정 순수하고 광대·정미해 여러 성인이 전수하고 군현이 밝음을 강하던 유교가 끝내 인도의 불교와 서양의 기독교와 같이 세계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근세에 이르러 은미함에 빠져 떨쳐내지 못함이 극도에 달해 거듭 오는 희망이 위태롭게 없는 것은 또한 어째서인가.

나는 대한 유교계의 한 분자이다. 나의 조선과 내 평생이 공자의 은사를 받음이 막대한데, 오늘날 공자의 교가 하루하루 나아감이 암담하고 하루하루 위태로운 두려움을 얻어가는 경황을 맞닥뜨려 올바르고 늠름하지 못할까 그게 두렵다. 실로 두려워 진땀이 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을 거슬러 생각하여 마지막 종류를 추측해 보니 유교계에 삼대 문제가 있었다. 그 삼대 문제에 나아가 개량하여 새로운 것을 구함을 하지 않으면 위 유교는 흥기함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끝에 달하여 멸절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 유교를 없애지 않는다면 이 문제에 대해 개량하여 새로운 것을 구할 호걸 지사가 나타날 것이겠지만, 우리 재한 세계에 있어서 유림의 현황을 관찰한다면 이 개량하고 새로운 것을 구할 식견과 정신력을 지닌 자를 잠시 보지를 못했다. 오호라, 아픔이 사방에 심하고 미친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러 스스로의 힘을 마땅히 일으켜야 하는 것이라 차라리 그 여러 선배에게 죄를 얻어 유림파의 분노를 얻을 지언정 우리 공자의 도가 끝이 나 땅에 떨어지는 것은 볼 수가 없을 따름이다. 이에 따라 감히 오류를 무릅쓰고 삼대 문제를 들어 개량하고 새로운 것을 구하는 의견을 나타내고자 한다.

소위 3대문제란 무엇인가.

하나는 유교파의 정신이 모조리 제왕측에 있어, 인민 사회에 보급할 정신이 부족함이고, 

또 하나는 여러 나라를 돌면서 천하를 바꿀 것을 염두에 둔 주의를 익히지는 않고서 ‘내가 몽매한 자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몽매한 자가 나에게 구하는 것이다’(주역 蒙卦第四 중) 하는 주의를 지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한반도의 유가에서 간략하고 쉽고 바르고 적절한 법문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지루하고 끝도 없는 공부를 오로지 숭상한 것이다.

....

(중략.. 저 3대문제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들..)
.. 

그런즉 오늘날의 유학자가 각종 과학 외에 본령학문을 구하고자 한다면 양명학에 종사하는 것이 실로 간단한 법문일 것이다. 대개 치양지의 학문은 정확히 본심을 지목하여 모든 것을 초월해 성인에 들어가는 문로이고, 지행합일은 心術의 은미함에 성찰하는 방법이 긴요하게 떨어지고, 사물 응용에 과단성이 활발하니 이는 양명학파의 기질과 사업상 특별한 저술을 지은 공로가 실로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아! 후배의 천한 식견으로 어찌 주자학 양명학에 대해 굳이 말해서 학계상 일대 문제를 일으키겠냐마는 장래 후진 학계를 관찰하건대 간단하고 곧바르게 떨어지는 법문이 없고나서는 공맹의 학문에 종사할 자가 아마도 드물어지게 된다면 대저 공맹 문도의 하나인 주자학 양명학을 어떻게 버리고 택하기라도 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 공맹의 도로 하여금 그 전승을 잃지 않고자 한다면 부득이 간단하고 곧바로 떨어지는 법문으로 후진을 가르킴이 올바른 것이다.

아아! 이상 3대문제에 대해 다소 어리석은 식견을 감히 내놓은 것이 실로 새로운 의견도 아니고, 다 경전 안에 있는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다른이가 구해주기를 기다릴 것 없이, 다만 그 종장의 잃어버린 바를 구원하여 본면목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니 오늘날의 군자들은 부디 성내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대개 과거 19세기와 오늘날 20세기는 서양문명이 대발달한 시기고, 장래 21세기는 동양문명이 대발달할 시기니(글쎄...;;;;) 우리 공자의 도가 어찌 땅에 떨어져 끝나겠는가. 장차 전세계에 그 광휘를 크게 빛낼 때가 있을 것이니 아아, 우리 한반도 유림이여 밝은 안목으로 관찰하고 몸을 떨쳐서 책임을 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 서양 교계로 보아도 로마 구교 시대는 유럽의 어두운 천지였다. 만일 마르틴 루터의 대담함과 열혈로 개량하고 새로움을 구하지 않았다면 유럽의 해와 달이 지금까지 어두운 중에 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운에서 종교까지 그 관계가 과연 무엇과 같겠는가. 

우리 한반도 유자의 맺어진 습관이 개량이라고 한다면 뭔가 크게 바뀌는 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천하 만물이 대소를 막론하고 오래면 반드시 낡고, 낡으면 마땅히 고쳐야 하는 것이니 만약 낡아도 고치지 않으면 끝내 사라지고 말 따름인 것이다. 가히 막연히 새로움을 구한다고 하면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新자 한자는 우리의 고유한 광명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오랜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안다’(溫故而知新) 이라고 했고, 장자가 말하길 ‘지나간 옛 생각을 씻어내어 새 뜻이 찾아든다’(濯去舊見 以來新意)고 하였으니 도덕은 나날이 새로워져 빛이 빛나고, 나라의 운명은 오로지 새로워져 거듭 길어지는 것이니 새로움을 구하는 뜻이 외래에서 온 것이 아닌 것이다. 

아, 우리 유림 제군들이여...

(서북학회월보 제 10호, 1909년 3월 1일)

201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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