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의 유학자들이 경박하게도 무릇 한-송의 다른 해석을, 반드시 송 쪽을 어기고 한 쪽을 따르는데, 비록 의리가(송쪽에) 명백하여 성인이 일어나도 바뀔 수 없음에도, 반드시 깎아내려 하자를 찾아 이로서 왜곡된 말을 이루고자 하니 어찌 공론이라 하겠는가.
後儒輕窕, 凡漢宋之異釋者, 必欲違宋而從漢, 雖義理明白, 聖起不易, 而必欲啄毁求疵, 以成其拗曲之說, 豈公論乎.
정다산 "대학공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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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종 언급하곤 하는 책인 '대학공의'는 기존 주자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구성된 "대학장구"의 해설이 대학의 본뜻에서 다를 수 있다는 견지에서 기록된 저서이다. 그런고로 본서에서는 구태여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실로 많은 주자 해설 비판이 발견된다.. 따라서 본 구절과 같이 한유(漢儒)를 비판하고 주자가 포함된 송유(宋儒)를 옹호하는 내용은 오히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따로 조사해서 남길 부분이지만, 정다산은 본인 증언에 따르면, 조정에서 이루어진, 정조 주관의 시험에서 1등 장원을 하고도 주자 해석과 다르다는 이유로 등수가 떨어진 전력이 있는 사람이기까지 하다.)
2. 정다산의 학문체계는 '실학'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가치지향과, 정조 연간이라는 독특한 시대 분위기와 연관하여 여러 방면으로 해석된 바 있다.
그에 대해서 많이 나오는 걸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1) 한,당 유학의 관점을 중심으로 기존 주자학 학문체계의 틀을 비판-극복하였다.
2) 상제천 등의 개념을 도입해 (아마도 천주교의 영향 안에서) 아예 유학체계의 틀 자체를 깨뜨리려고 노력하였다.
3) 주자가 영향을 받은 한대 유학자 정현을 비판함으로서 오히려 더 강력한 주자 비판을 전개해 나아갔다.
4) 아니다. 어쩌면 경전의 원리주의적 해석에 골몰한다는 의미에서는 가장 지독한 보수주의자다.
..
정리하자면 1~3번은 비교적 진보적 면모를 보여주는 견지, 4번은 그의 상고주의적 경향을 비판한 견지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 족이든 간에 '다산은 주자의 설을 한-당의 설을 활용해 비판하였다'는 1)의 학설이 지닌 강력한 틀은 벗어나지 않은 듯 하다.
다만, 본 구절의 내용을 놓고 생각해본다면,
결국 정다산이 원한 '공론'에는, 사실상의 주자 비판서에 마저도 송유를 오히려 옹호하는 그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정치적인 것이기에 앞선 순수한 학문적인 사실 추구의 영역도 있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사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그의 태도를 우리는 다 끝난 걸 지켜본 지금의 눈을 가지고, 정치니 의도니 하면서 마음대로 재단하고 있는것일런지도 모른다..
의도를 운운한다는 건 그 본인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라 실상 학문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도무지 머릿속에서 이 생각만큼은 떠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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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정다산의 입장을 "보수적 유학"으로서 평하자는 입장이 학계 주류가 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사실 이미 정리해 두신 바에 답변이 실려있는데요, 정다산에 대한 해석은 굳이 말하자면 전통주의/수정주의 식으로 시기에 따라 유행하는 해석경향이 갈린다는 설명이이 그나마 가장 중립적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정다산논란의 주된 원인은 그 저술에서 정말 여기저기 누구 할 거 없이 걸고넘어졌기에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1번과 3번은 한당유학과 송대유학의 관계에 대한 기본 전제 수준에서 양립할 수조차 없는 주장들입니다..) 결국 그 걸고넘어진 대상과 추구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가 논점의 핵심이 되는 셈인거지요.
그런의미에서 초기 5-60년대 연구부터 지금까지도
그 비판 대상 : 성리학-신분제-지주제
목적 : (유학, 정확히는 신유학 이전의 유학체계를 논리기반으로 한) 근대 사회(비슷한 것)의 성립
즉. 1번을 기반으로 한 연구구도가 사실 기성 학계의 가장 일반적인 논의고, 그것과 약간 다른 의미에서의 해석인 천주교 운운, 2번이 그 뒤를 바짝 쫓아 나왔지만 연구가 진척되면서 많이 사그러들었지요.
여기서 3,4번은 정다산 연구가 더 진척된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시각들이라 할수있습니다.
우선 조선후기의 진보성(혹은 근대화)담론에 대한 회의와 함께 제기된 4번의 경우엔 설명해주신 바와 상당히 일치하는 신진 연구자들의 주된 연구동향입니다. (물론 '실학'의 의미 자체를 주자학의 한 형태로 받아들인 동향도 별도로 있었고, 어쩌면 이 해석이 이루어지게 된 한 기반이기도 합니다만 요새까지 진지하게 퇴율과 다산을 '같은 것'으로 놓고보는 입장은 거의 없습니다...아주 없는건 아니란게 유감이지만요;;;)
이 경우
비판 대상 : 순수유학 외적인 해석을 일삼는 현대 유학자 및 그들이 지배하는 조선 사회
목적 : 선진유학적 이상사회의 건설(이념적인 차원에서)
3번은 족보가 꽤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각은 겉으로보기엔 1번의 일부고, 논리적으로도 그게 맞지만, 역설적으로 탄생 배경상 주로 예학 전공하시는 분이 4번을 옹호하기 위해서 발견하고 부각시킨 부분이기 때뮨입니다. 아예 이 시각 하에선
비판 대상 : 한대 유학을 비롯한 유교경전 해석 일괄
목적 : 경전에만 확실히 충실한 예법 확립(실질적인 차원까지 포함해서)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최근 해석이다 보니 3번이 가장 소수설입니다
수정컨대 1번과 4번이 대립중.. 2-3번은 소수설, (해설은 빼먹었지만)그 중간의 해석도 있음. 으로 말할 수 있겠네요.
2013. 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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