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메모해 두었던 글. 지금도 딱히 생각이 다르지는 않다.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책은 누가 재판좀 안 내주나. 싶은 생각도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
이기백 : 특수성이라는 것도 결국 보편성 위에 존립하는 것이다 하는데는 의견을 같이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화제를 다시 바꾸어서 아까 천선생이 제기한 것으로 잠깐 보류했던 문제 오늘의 한국사학이 대중과 유리되어 있으므로 이를 좀 생각해야 되리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이러한 좌담회 자체가 그러한 한국사의 대중화와 관계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한국사학자들이 그것을 꺼리는 이유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오고 있었는데요. 그만한 연구가 쌓이지 못해서....자신이 있으면 쉽게 쓸 수도 있지만 그렇지를 못한 느낌이있어요.
.
한우근 : 제 생각으로는 지금 우리나라 역사서적에는 저서는 많아도 저술이랄 수 있는것이 드문 형편 입니다.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조건이 그러한 면에서, 퍽 어렵다는 점입니다. 형식적인 예를 든다면 가령 학위논문이라 하더라도 제대로의 「디저테이선」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단시일 내에 하나씩 단편적으로 연구해서 그 연구의 집성이라는것은 대부분이「논문집」으로 되어있지 그것이 하나의 「디저테이션」의 형식을 갖출 수 있는 일관성있는 연구와 그러한 서술로 나오는 것이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가령 미국의 젊은 학도들이 한국에 와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것은 보면 한 문제를 갖고 3·4년동안 자료를 모아가지고 가서 3·4 년 동안 정리검토를 한 끝에 하나의 책으로 내서 훌륭한 저술이 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논문을 많이 내지마는 대체로 단편적인 것이 많습니다. 가령 어떤 문제가, 전체 사회는 아니더라도 같은 류의 문제성을 갖는 문제까지만이라도 종합적인 면에서 배려됨이 없이 연구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단편적인 연구들을 모아서 저서로 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제대로의 저술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중화라는 문제도 마치 학자의 논문은 일반대중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 어떨까 싶습니다. 종래에 한문을 논문에 직접 인용하는 예가 많아서 일반에게 읽혀지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논문은 누구나 읽기 쉽게 서술되어야 하겠다는것은 당연한 요망이겠습니다. 그러나 가령 비유해서 말한다면 미국사람으로 교양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아메리칸 히스토리컬 리뷰」를 다 읽는 것인가요. 여러 해 전에 미국서 역사학대회가 열렸을 때 그 지방의 일간신문의 논설에서 그 대회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에 역사학자들은 제일 애독자는 저자 자신들 밖에 아닌 저서들을 펴 내고 있다고 「조크」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대중화라는 것이 전문적인 연구논문을 바로 독자들한테 다 읽히라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저서는 많지만 저술이 드물다는 그러한 단계를 하루 빨리 벗어나게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문제를 갖고도 여유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그러한 기본적인 조건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
...
이기백 외, 1976,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삼성문화재단, 186~188쪽
-----------
.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보통 대학원 등의 사학사 시간에 유기/신집에 대한 초기 연구 다룰 때 초반부를 읽히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부 서술에 더 애정이 있는 편이다.
지금 읽어도 (좀 어지러운 난상토론이나마) 한국사의 이론화 문제나 시대구분 등등에 대한 의미있는 착상도 적잖이 보이고, 지금와선 70년대 한국사 연구자들의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로서의 사료적 의미도 있는 책이라, 가끔 생각날 때 열어보면서 타이프도 해 보곤 한다..(누가 깨끗한 가로쓰기 판형으로 재판본좀 내줬으면..)
.
윗 부분 인용부에 한정하면, 개인적으로 지지/지향하는 "역사 대중화"의 노선은 한우근 선생의 그것과 가깝다. 흥미있고 참신한 소재의 발굴이나 미려한 문체, 실감나는 서술 등등도 다 좋지만, 결국 하나로 좁혀질 수 있는 선명한 메시지의 존재가 관건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2023. 4. 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