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쓴 메모이지만, 최근들어 다시 되풀이할 기회가 있어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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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연구하는 사회과학 전공자 선생님들과 나름 오랜시간 세미나를 참여중인데, 개중 멤버가 교체될 때 마다, '인구'에 대한 질문을 잊을만할라면 한번씩 받게 된다. 그 만큼 인구란 것이, 제대로 그 숫자를 알 수 만 있다면 그 시기 정치-사회-경제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데이터인 탓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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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름 그 시대 연구자로서 이런 말밖에 못 드리는걸 좀 죄송스럽게 생각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연구-발굴된 자료 내에서 판단컨대, 이는 알 수 없는 정보에 속한다. 적어도 17세기 중엽 이전까지의 인구데이터는, 심지어 해당 전공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추산치에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어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백보 양보해 어떤 방식으로 추산해 어떤 결과를 지지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를 토대로 2차적인 논의의 근거로 삼는 시도가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좀 더 알기쉽게-폭력적으로 말해야 한다면, '이걸 수치비교가 가능할만큼 구체성있게 던지는 이야기'는 정말 대부분은 저자의 상상 내지 기대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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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조차도 조선 초 이야기고, 고려시대 이전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좀 자극적으로 말해, 호적을 비롯한 이 때의 지방행정 전반이 '국가가 세금과 병력 동원을 어디까지 시도할 수 있는가'의 가이드라인일 뿐, 그 이상의 어떤 구체적인 정보값도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근대 행정과 비교해서 그렇다는거고, 당시의 행정기록들이, 당시 시대상의 여러 측면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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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보다는 살짝 더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개인적으로는 '물가/가격'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정 물품의 '미곡/면포 대비 교환비' 정도는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가격'내지 '물가'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다... 아주 가끔씩 논문 중에서도 이를 '과감하게' 지르는 글들을 보게 되는데, 그분들의 일도양단 자신감에는 경의를 보내나, 더 솔직히는 '정말 겁도 없으시군요' 싶을 때가 많은 게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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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한국 전근대사 연구란게 늘 이런 식이다. '궁금한 것'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의 범주를 설정해, 그 안에서, '의미있는 해명'을 해 내는 작업의 연속이다. 그 '해명'을 조금만 까탈스럽게 따지면 사실 아무것도 입증할 만한게 없지만, 어쩌겠는가, '주어진 자료 내에서 가능한 설명들 중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대꾸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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