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논문, 나아가 지금까지도 계속 붙들고 있는 '조선의 유교화' 문제에 관련된 명제인 '유교사상이 사회화된다or혹은 영향을 넓게 미친다or성리학 사회가 되었다'.. 식의 이야기는 대충 세 가지 질문과 관련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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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사조를 따르는 행위(하다못해, 그 사조를 따른다고 표방하는 행위)가, 지식인층 내지 일반 사회내 어디까지 권위or강제력or통일성or보편성 등을 확보하고 있는가. (지식인층이냐 일반 사회냐도 사실은 구분되는 논점)
ⓑ 특정 사조가 정치 제도 내지는 사회 관행, 의례 등등의 '개변'에 유의미한 근거로 사용되었는가.(확산의 정도나 통용 여부가 아니라 '개변의 근거'가 포인트.)
ⓒ 상기한 a,b 모두의 측면에서, 해당 사조의 경합가능한 대안 구심점이 존재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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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에 입각하여 '성리학의 영향력'을 말하는 작업, 그리고 그 반론적 성격의 작업 모두 훌륭한 성과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좀 아쉽게 느끼는 점은, 세가지가 '섞여서' 설명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층위 혼돈이 사실 조선 후기 연구에선 덜 고민되는 문제인데(내가 볼 때 그 바닥 고민은 또 다른 곳에 있음), 성리학 도입사의 차원을 다루게 되는 13~15세기 (유교)사상사 연구에선 그 혼돈의 문제가 거의 숨쉬듯이 발생중이다. 화를 낼 일도 아니고, 애둘러 말하는 것 아니고, 누굴 탓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분야 연구 전체에 공기와 같이 만연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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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마구 섞이는 상황은 박사논문 작업의 동기이자 그 과정상의 오랜 난관이었다. 박사논문은 나름 저 중에선 ⓑ를 중점으로 다루는 걸 목표로 그걸 좀 분리해보려는 시도였다. 내 딴에는 ⓐ~ⓒ 중에서는 ⓑ의 구체적 성과가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작업이 박사논문이다. 나름대로는 ⓐ ⓒ의 성취로 ⓑ가 상식 선에서 납득이 되었다고 적당히 넘어간 연구가 많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예컨대 '유교국가가 되었다-체제정비가 되었다'라고 느슨하게 그렇게 설명을 해 놓고, 그 근거를 들어야 할 타이밍에는 ⓐ의 견지에서 권근or김종직or조광조 등의 성취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고려 말 불씨잡변으로 ⓒ에 해당하는 문제를 제시하면서 메꿔온 경우가 많아 보였고, 그래서 이를 좀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길게 보면 석사논문으로 쓴 "삼강행실도" 문제도, 그 책이 앞서 '물타기'의 주제가 되어왔음을 문제시하고자 쓴 것도 컸다.).
박논을 쓰려고 볼 때의 선행연구도 혼란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쓰여진 논문에 대한 반론을 받을 때조차도 그에 대한 혼란을 계속 목격했어야 했다. ⓐ의 차원에서 '덜 성리학적인 성리학자의 선례' 내지는 '중앙 엘리트가 원하는대로 잘 돌아가지 않은 사례'를 들어 '그 시대가 그 만큼 성리학적이냐'라고 질문을 받거나, 심지어 ⓐ를 근거로 ⓒ를 이끌어내, "그 시대는 아직 불교or다른 사상이 '강한' 시대 아니냐"(사상 사조 뒤에 '강하다'는 서술어는....솔직히 조금 괴롭다.). 식의 패턴을 다수의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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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니, '조선은 유교국가or사회다'...혹은 그에 미진했으나 점차 그렇게 변화해 갔다.. 내지는 유교국가or사회가 아니다. 모두가 다... 그 개별 작업들의 지적 성취들과는 별도로. 근본적으로 '같은 현상'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너무 많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건 어딜가나 마찬가지지만, 내 전공 관련해서는 이 문제에 유독 만연해있다는 뜻이다.(당연히 내가 잘한다or잘했다는 뜻도 아님.. 나보다 훨씬 대단하고 성실하고, 그에 값하는 충분한 지위와 영향력을 가진 분들께도 이 문제가 예외가 아니더라. 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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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쓰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거듭, '우리가 정말 같은 대상or층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를 되짚어보는게 정말 중요한 문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 만큼 남의 말을 '제대로' 듣고 읽는 일이 연구의 실무적인 차원에서도 정말 중요한 일이며... 좀 놀라울만큼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반성적으로) 곱씹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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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논 쓰던 시기, 어떤 날의 일기장 비스끄므레한 노트를 보고 생각이 나서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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