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에 썼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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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작년 하반기 쯤에 어디다가 끼적였고, 그 이후 언제쯤인가 트위터 쯤에다가도 비슷하게 휘갈기고 잊어버린 메모였는데, 더 놔두면 아주 잊어버릴까 싶어 생각난 김에 여기다가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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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척화파를 비롯한 '당장의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신념윤리 실천자'들에 대한 제일 독한 비난은, "솔직히 척화파들은, 설마 저런다고 정말 죽지는 않겠지 싶은 안일한 만용을 부린 게 아니었겠냐" 라고 생각한다. (그 응용으로 '실제로 척화파 중에 죽은 사람이 몇이나 있냐'도 있다) = 어느쪽이든 그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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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파든 누구든, 어떤 '래디컬한 정치가 겸 사상가'에 대한 발표 자리에서, 질문자나 토론자 등이 "사상가의 물질적인 이익추구 욕망"에 대해 지적을 할 때, 발표자인 사상사 연구자께서 눈에 띄게 난감해하거나, 혹은 날을 세워 적대적으로 대응하시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목격의 순간마다 작게나마 유감(정말 이따금은 실망)을 하게 된다. 그 방어적-적대적 대응을 통해, '사상가들의 명예회복'이라는 본심을 들켜버리신 것이 아닌가 싶어지기 때문이다.(물론.. 후술할 바와 같이 '본심'이 무엇이냐와 그 연구의 가치는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실망' 이라고 해 두자. - 이게 더 가혹하나싶기도 하지만;; 암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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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답해야 했는가. 정답이야 있겠냐마는, 내 '취향'에 맞는 대답은,(어쩌면, 연대 학풍?에도 모순되지 않는 답변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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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의 정치경제적인 기반이나, 그로부터 출발된 속류 욕망은 분명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행동의 동기를 따진다면 그에 가까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번에 제가 말씀드리는 주제는, 그 사상가의 지적인 활동이 '어떤 동력(욕망)으로부터 추동되었는가'가 아닌, 그 욕망을 위해서 그 사상가가 '하필' 특정 언어를/논리를 채택하게 된 이유와 맥락에 대한 문제임을 다시한번 강조드리고자 합니다"
→상기한 대답이 유별나게 좋은 정답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내 취향에 가까운 답변 방향인데, 어쨌든 만나기는 어려운 답변이라 좀 아쉽게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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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동기로서 특권의식이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학술이나 사상적 표현이, 그러한 설혹 욕망을 실현, 혹은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더라도)....그와 별도의 차원에서 사상적 행위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방향의 답변을 자주 만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건대, 사상가로 대표되는 개인의 학술활동에 담긴 '진정한 동기(심지어 '선의와 악의'로 구분되는 윤리적 가치)'을 찾고자 한다는 전제가, 사상사적 방법의 지지자께도/(선후배들 사이에도 종종 계시는) 사상 무용론자께도 모두 공유되고 있는 탓이 아닐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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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그런 '주된 동기/부차적 동기'같은게 그닥 분별되기도 힘들고, 막상 그 '개인 차원의 동기'가 그의 정치/사상적 행위를 설명하는 절대적인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에서, 역시나 작은 유감을 가지게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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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컨대, 척화파의 주장이, 주화파 논자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증오감을 기반으로 도출된 것임이 '빼도박도않게' 증명되는 문헌이 어디선가 새로 발굴된다고 가정을 해 보자.. 물론 척화파 연구의 아주 흥미로운 맥락을 더해주는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딱히 그렇다 해도, 척화파의 주장이 가진 연구 대상으로서의 정치적/사상적 가치가 (그 풍부함이 보충됨으로써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크게 떨어질거라고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사상가의 저술 동기로서의 사적 욕망-사익 추구의 문제는, 그 저술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때로는 그 성격을 새롭게 부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해당 저술을 분석하는 '절대적' 잣대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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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파 관련은 내 전공과 무관한... 사실상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분야이지만, 어쩌다가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생각이 나서 메모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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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경 작성
2023. 8. 6 약간 다듬어서 새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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