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다른 곳에 메모한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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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군도(群盜)문제는 박사논문에서 꽤 다루었던 사안이지만, 나름 열심히 추적한 입장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남겨진 자료만으로는 “양적 추세”를 알 수 없으며, 그 까닭에 이를 기반으로 한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박사 예심~본심 사이에 정말 작심하고 몇주간 통계를 내다가 포기했던 기억을 두고 남기는 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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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좀 오랜 연구에서는 조선 건국 후, 수조권의 해체와 더불어 나타난 사적 소유권 증대, 농업생산력 발전과 함께 나타난 경제적 수탈, 민의 의식 성장 등등이 항쟁으로 발현된 게 군도라고 정리하기도 했고,(=사실상 민중운동과 군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후의 연구에서는 흉년이나 세금수취, 재정 파탄 등, 국가의 위기, 민의 생활고 등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어느쪽이든, 군도가 조선 초기부터 나타나서, 이후로 심화되었다는 것에는 대강의 합의를 이루고 있다.
사실은 나도 이러니저러니, 박사논문에다가 '세조시기 보법'을 이유로 군도가 늘어난 결과, '덕형절충'이 성종시기를 거쳐 '유교적 규범의 법제화'로 귀결되게 되었노라 썼으니, 그 기존 연구의 흐름에 맞춰 정리한 셈이다.
사실은 나도 이러니저러니, 박사논문에다가 '세조시기 보법'을 이유로 군도가 늘어난 결과, '덕형절충'이 성종시기를 거쳐 '유교적 규범의 법제화'로 귀결되게 되었노라 썼으니, 그 기존 연구의 흐름에 맞춰 정리한 셈이다.
다만 종래의 다양한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실제 통계화하는 작업은 녹록치가 않다(나도 실패했다는 뜻이다). 가령, 어떤 시기엔 도적의 발생이 나름 세심하게 보고되기도 하지만, 어떤시기엔 그냥 “전국에서 수백/수천 인”이런식으로 보고되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세종 후반-명종대 사이 실록 기록을 통해서 확실히 도적 문제가 조정의 심각한 사안이었음이 확인되지만, 지방통치의 역사적 추이를 염두에 두면 민간의 비체제적 무장집단은 관의 지방지배가 느슨했던 12-13세기에 한명이라도 많아도 더 많은게 당연하다. 그리 본다면, 대관절 군도는 수백년 내 '줄어든'것인가 '늘어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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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근원적으로, 남겨진 군도에 대한 기록이 “군도에 대한 중앙 조정의 적극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인지,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인지를 알 도리가 없다. 이런 판국이니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군도 그 자체가 상시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과, “때에 따라서 이를 조정에서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그 정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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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솔직해질 부분은 솔직해져야 하는데, 우리가 확인가능한건, '군도에 대한 국가 지배층의 반응'이지, '정말로 사회가 (이전 시기보다)혼란한 현상' 자체가 아니다. 거칠게 말해, 도적 얼마를 잡아서 얼마를 처형했고, 얼마는 풀어주었고, 그 중 재범은 어떻게 삼범은 어떻게 하자. 구구절절 길게 써넣을 수 있는 시기는, 어쩌면 '도적이 팔도에 창궐하여, 군사를 일으켜 이를 토벌하였다'고 짧게 쓴 시기보다는 (상대적으로는) 더 '안정된' 시기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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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어차피 같은 집단이 일괄적으로 정리한 실록인 이상, 실록에서 긍정적으로 쓴 부분은 '조정의 치세를 과장하고자 쓴 기록'이고, 부정적으로 쓴 부분은 '시대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기록'이고.. 그럴 수가 없다.
실록이 무오류의 사실이라든가, 완벽하게 정리된 기록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느 부분은 믿고 어느 부분은 안 믿고를 판별하는 건 거의 최후의 최후까지 유보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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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어차피 같은 집단이 일괄적으로 정리한 실록인 이상, 실록에서 긍정적으로 쓴 부분은 '조정의 치세를 과장하고자 쓴 기록'이고, 부정적으로 쓴 부분은 '시대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기록'이고.. 그럴 수가 없다.
실록이 무오류의 사실이라든가, 완벽하게 정리된 기록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느 부분은 믿고 어느 부분은 안 믿고를 판별하는 건 거의 최후의 최후까지 유보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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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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