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업 첫 시간에 '시대구분'에 대한 개설강의를 했다.
여러번 강의하면서, 거의 모든 수업에서 첫 시간에는 꼭 하는 이야기인데, 매번 이걸 어떻게하면 더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하게 된다. 이번년도 버전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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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압 환경의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끓는다고 보통 말합니다마는, 찬찬히 따져보면 그 설명이란게 꼭 맞는 것도 아닙니다.(과학사의 디테일을 더하면 복잡해지지만) 사실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끓는게 아니라, 물이 끓는 온도를 어느순간부터 '100도'라고 말하기로 약속한 것이지요. 그걸 '100'이라는 숫자로 말해야 한다는 것 부터, 모든게 '물이 끓는 일' 그 자체하고는 상관이 없는 추상적인 약속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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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구분이니 왕조교체니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게 아닐까요. 중세에서 근세, 혹은 근대가 되어야/혹은 됨으로써 무언가가 바뀐다고 말합니다. 그 와중에 그 틀에 안 맞는 케이스는 '예외'로 치부하거나 하면서요. 하지만 이 또한 순서가 반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수많은 변화들이 있을 때, 그 변화 중 도드라지는 시점을 임의로 설정해서, 그 기준과 시점을 단순하게 설명하기 위해 붙여둔 이름이 '시대' 같은 '역사학적 개념'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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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인즉슨, 역사학을 공부할 때... 큰 틀에서 시대든, 제도든, 사상이든, (가령 고려는 귀족적이고 자유분방한 문화-저는 그것도 반만 믿지만-, 조선은 유교적 사회.. 의정부 서사제는 신권 위주의 정치운영론.. 등등) 어떤 완성된 틀을 먼저 상상한 뒤에, 혹여 거기 안 맞는 사례가 있으면 그걸 예외로 치부하는.. 그런 순서로 생각해야 하는게 아니라..
먼저 절대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수많은 삶의 흐름이 있고, 그걸 시간을 중심으로 대략이나마 간추려서 사리에 맞게 정리해둔 것이 여러분들이 흔히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XX시대/XX제도/XX사상/이들의 특징인 XX성... 등등의 개념들임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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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 같아보이지만, 절대 그 둘은 헷갈려선 안 되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역사학의 개념화된 지식이 죽은 지식이고 쓸모가 없다는 말로 이해하면 더더욱 곤란합니다.. 저는 오히려 같은 전공을 하는 또래 동료들 중에서는, 비교적 앞서 말한 XX시대.. 등등의 추상적 개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여러분들도 그 소중함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지성의 큰 역할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게 중요하다 여기는 만큼, 여러분들께 그 위상을 혼동하지 않기를 주문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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