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따금 정말 견딜 수 없을만큼 생각이 복잡해지고 예민해질 때가 있다.
말 한마디, 글 한 결귀를 쓰는 것에서부터 온갖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이래도 되나/이게 맞는건가/혹시 탈 나진 않을까/뒷감당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에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요새들어는 부쩍 자주) 찾아오곤 한다.
대학원생 신분이란게, 제 밥벌이 하나 못하는 '유예된 처지'인 탓일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정말 일상 자체가 휘발유를 뒤집어쓴 채, 주변인의 '불안'의 불씨에, 언제고 활활 발화될 준비가 된 상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어쩌면 "A하지 않으면 B에 이르게 될거야"식 화법, "너 그러다가 C 된다"식 화법의, 사람을 흔드는 말에 거의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라고 말해도 될 성 싶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때로는 악의없는(가끔은 악의 있는) 지나가는 사소한 말들 하나하나에 매번 흔들리고 꼼짝달싹 못하는 기분이 드는 일상이라는 뜻이다.
(가장 서글픈 대목은, 스스로 불안한 사람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 불안을 주변에 전염시킨다는 부분일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했겠지. 닿을지 모를 사과의 말을 전해 본다.)
2. 턱 밑까지 차오른 불안감에 우왕좌왕하다 못해, 생각을 조금 다시 먹기로 했다.
솔직히 전업 대학원생(?)으로서의 현 상태란, 부모의 도움이든, 자잘한 부대 수입이든 생활비가 모조리 떨어지면 당장 내일이라도 관둬야만 할 극히 불안정한 상태다.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먼 미래를 꿈꿀 만큼 뭐라도 좀 보장이 된 사람의 것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거창하게 저 멀리, 다가오지 않은, 그리고 사소한 일상사의 세심한 위험까지 이거 저거 깊게 따질 필요가 있나 싶다. 천리 밖의 미래를 상상해 봤자, 당장 내일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허무감을 상상해보면, 불안감의 양분이 되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건 대체로 퍽이나 무망한 일이 된다.
3. 예상과는 달리 씩씩한 급 마무리지만, 아무튼, 불안감을 견디다 못해, 너무 많은 것들을 깊게 생각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당장 내일 관둬도 후회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단 되는데까지만 오늘 할 일을 해 보기로 했다.
주변에게 인정받는 가치있는 글, 주변에게 미움받지 않는 좋은 처신에 대한 고민도 다 좋지만,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당장에 내가 하고 싶은 것,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그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틀려서 문제가 되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고치면 그만이다. 다시한번 반복하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당장 내일도 관둬야 할지 모르는 게 지금 처지의 공부하는 일상이다. 이것저것 재다가 어느새 관두고 스러지는 것 보다는, 잘못이란 걸 한 뒤에 손해보고 고칠 미래가 있는 쪽이 아무래도 훨씬 긍정적이다..
4. 요 며칠, 하던 일들이 죄다 잘 풀리지 않아서 좀 괴로웠는데, 그 중 한 꼭지를, 주저에 고민만 반복하다 정작 내용은 없고 죽도밥도 안 되는 상태로 마감에 쫓겨 내던지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봤다. 오래간만의 푸념 끝.
2020.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