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을 봤다.
1) 처음에는 '가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결국에는, 국가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2) 가족과 국가는 서로의 보완재이면서도 경우에 따라 대체제가 되기도 한다.
'태어남'그 자체로부터 나타나는 원초적 공동체인 가족은 그 자체로는 국가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퇴거명령'으로 대변되는 공권력의 외면 속에서는, 모두가 더욱 일차원적인 '가족'을 갈구하기도 한다. 다들 각자의 비틀린 혹은 관성적인 이유로 결혼이든 출산이든 입양이든 '가족'을 원하고, 심지어 '혈연적 가족'이 제 기능을 못할 때에는 (요나스로 대표되는) '진정한 가족'에 이입하기도 한다. 어느쪽이든 '국가'의 빈 자리에서 가족의 색채는 어느 때보다 진한 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3) 하지만 '가족'으로서의 삶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아니, 더 나아가 급기야 '태어나게 만든 죄'를 묻게 만들 정도로 가족 자체가 개인의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가버리게 된다면, 한동안 존재감을 잃었던 '국가'에 손을 뻗는 순간이 온다.
(안타깝게도 당초 주인공 자인의 가족은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고통 속의 자인은 망명을 신청하게 할 '출생신고서'의 존재를 갈구하고, 자신을 태어나게 한 죄로 부모에 대한 '고소'를 가능케 한 자국의 사법 제도에 손을 내밀고, 급기야 더 먼 곳에 있는 '스웨덴'을 갈망하게 된다. 결국 (그것이 '진짜 구원'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영화의 엔딩이 '신분증 사진 촬영을 하며, 처음으로 웃는'자인의 모습으로 마무리된 것은 상징적이다.
- 다만 강조해서 말하건대, '가족과 국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내 설명은 해당 영화가 '국가제도가 개인을 구원하는 목적론적 구원서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확히는, '사는게 좆같아진' 주인공의 고됨이 일차적으로는 가족의 부재 속에서 일어나는 비극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부재 속에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의미이다.
4) 물론 개인이 국가와, '적당한 매개' 없이 맞닿기가 쉬운 일인것은 아니다. '국가'에 접근하려던 편법적(동시에 '가까운') 시도들을 상징하는 신분증 위조-밀항이 실패하고, 미디어-국제구호단체와 같은 '비일상적 매개'의 도움을 받은 주인공만이 구원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에는, 인간이란 그 '매개'의 힘을 빌어서라도, 누군가는 결국 가족과 국가, 때로는 양자 택일적으로 가족 혹은 국가와 같은 '공동체'를 필요로하게 되는 것만은 여전할 것이다.
(그 '국가-가족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거듭된 주인공의 고통을 전시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제3세계 빈곤 포르노'가 아닌 증거라고 생각한다.)
5) 이런저런 여담.
- 영화 전체의 메시지에 비하면 지극히 파편적이지만, '1세계 구호단체에 의한 3세계의 구원' 서사가 아주 조금 찜찜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감독 자신이 연기하기도 한) 변호사 '나딘'을 포함한 자국의 사법제도 전반, 나아가 자국의 미디어 집단 등 '중간 매개'를 충분히 설정해 둔 것을 볼 때, 그렇게까지 단순한 이분법은 아닌 것 같아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1세계의 구호를 받는 현상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 영화는 짤막하게나마 '영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 놀이동산에서 만난 '스파이더맨 옷만을 입은-바퀴맨'의 존재가 자인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어른들이 아이들을 구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 목적지로서의 가족-국가의 존재와는 별도로) 어쨌든 자인을 구하려 한 것은 라힐이었으며, 요나스와 사하르를 구하려 분투한 것도 자인이었다. 현란한 영웅심이나 당장의 완력-재력보다는, 당장의 개인을 구원하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보호본능'같은 매우 1차원적이고 일상적인 행동이라는 것. (물론 후술하겠지만, 이는 이 영화의 매우 말단에 속한다)
- 3세계의 경우에는 국가의 큰 울타리 아래에서, (서로의 보완재, 혹은 대체제로서) 가족의 존재가 기능하는 것이라면, '국가-제도'의 역할이 충분히 안정화된 1세계에서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가버나움 인근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1세계 국가'라기 보다는, 1세계 시민단체인 것도 같은 현상이겠지.
- 아마도 (상상이 잘 안가지만) 저 영화의 배경이 1세계 국가였다면, 그리도 '국가'의 존재가 구원자인양 깊게 작용할 수 있었을까. (전통적인 히어로무비로 대표되는) '자경단 전통'을 강조해 온 헐리웃 영화였다면 분명 주인공을 둘러싼 '개인-사회의 영웅적 행동'에 무게를 더욱 크게 주지 않았을까..(전술한 것 처럼 이미 이 영화도 아주 약간은 영웅에 대해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 비중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봤다.
대강 그런 생각들을 했다.
201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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