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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에 “어떤 빵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명확하게 대답합니다. 전 파리바게뜨의 찹쌀 도너츠와 소세지빵, 두 가지를 제일 좋아합니다. (웃음) 몇년 전이죠. 한참 대기업 빵집이 골목 빵집을 다 죽인다는 이슈가 있었어요. 이 주제로 기자들이 저에게 인터뷰 요청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제가 “대답을 하면 그대로 기사화할 수 있는지 약속해달라”고 했어요.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시길래 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파리바게뜨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요.
전 파리바게뜨 빵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동네 빵집 얘기를 해볼까요. 30년 동안 빵집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옆에 막 결혼한 새댁이 뭘 해야할 지 몰라서 파리바게뜨를 차렸어요. 그랬더니 30년 된 빵집 매출이 반으로 꺾였어요. 이유가 뭘까요. 빵이 맛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게 제 대답입니다. 예전엔 동네 빵집은 어디나 잘 팔렸어요. 빵집이 많이 없었거든요. 돈이 잘 벌리니 굳이 맛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지낸 거에요. 30년 빵집이라고 하지만 주인이 실제로 빵 만든 건 10년 밖에 안돼요. 그 뒤론 사장도 자기 빵을 먹어보지도 않아요.
저는 사명감을 갖고 빵을 만드는 분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일정한 품질의 빵을 만들어내는 대기업이 있으니 맛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스타벅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고급 커피 시장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커피 맛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을 만든 거죠. 그래서 전 오히려 파리바게뜨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에요.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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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오월의 종' 빵집사장의 도발 "파리바게뜨 많아져야 한다(https://news.joins.com/article/233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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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준화'와 '예술성'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나름대로 오랜 시간 붙들고 가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노블리티에 대한 찬탄을 모른다며 이따금 매도당하곤 하지만) 나조차도 "좋은 것"은 사실 그 기준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 나아가 이를 누군가 알아주거나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서술을 뛰어넘는, 무리지은 합의를 뛰어넘는, 직관의 영역에서 맴도는 '탁월함'이란,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2) 하지만, 동시에 그 '탁월함'의 세계란, 그 자체만으로는 서술이나 설득이 동반되지 않기에 재생산될 수도 없고, 그 까닭에 부싯돌의 불꽃처럼 나타났다 흩어져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안다. 그 뿐인가. 그 일시성 비정형성은 그 탁월함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회의적 입장에 제법 취약하기도 하다. 서술-설득이 빠진 탁월함은, 그것이 '얻어 걸린 것'이 아니냐는 비단 타인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제기되는 시니컬한 냉소에 답변하지 못한다.
- 물론 아까도 말했듯 '탁월함'은 합의의 산물이 아니므로, 달리 설득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세에 발 딛는 존재로서, 인간이란 자족적 에고만으로는 저 자신 하나의 삶조차 감당해내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최근 소세키의 "마음"을 읽으면서 강하게 느낀 인상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회와 세계에 대한 혁명적-선지자적 야심을 꿈꾸는 게 아닌, '심미적 탁월함'을 꿈꾸는 이에게도 어떤 '표준'의 존재는 여전히 절실한 것이 된다.
3) 동네 빵집이 대기업보다 탁월할 수 있다. 오히려 개성의 독자성, 유연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보다 못한 게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그 까닭에 파리바게뜨 유행이 그 탁월한 개성의 세계를 획일화한다는 지적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그 '탁월함'이 찰나의 우연을 뚫고 스스로의 존재를 현세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수용자의 측면에서든 생산자 자신의 측면에서든 '표준'의 존재가 "생각보다는" 중요하다. 그 까닭에 당위적 측면에서 잘 된 동네 빵집은 '파리바게뜨'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기사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2019.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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