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같은 걸 운운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런걸 찾는 일이 유익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짧은 역사 공부를 통해 믿게 된 한가지 '개똥 역사철학'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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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현재적 처신이나 노력은 당사자가 열망한 미래 목표의 도달(혹은 그 목표의 좌절)과는 대체로 무관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말해 스스로의 삶에 충실한 것은 그 자신의 내적인 구원을 위해서든,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귀중한 삶의 자세이지만, 최소한 그 노력이 '목표달성'과 명확한 인과관계를 갖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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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맥락에서, '미래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란 말은 몇 가지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는 현 시점 누군가가, '이렇게 살지 않으면 실패하고 말거야'라고 '가스라이팅'하는 바에 그리 심하게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그 미래의 시점에 내가 원하는 성취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섣부르게 스스로의 어떤 잘못이란걸 찾으려 들 필요도 없다는 뜻이며, 설혹 내가 기대 이상의 성취를 얻었다고, 내 자신의 어떤 대단한 미덕을 찾으려 우쭐댈 일도 아니게 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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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를 통해 만나 온,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는데 실패한 과거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그랬듯, 현재의 내 행동/처신들이 내 미래에 얼마나 유의미할지는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실한 삶은 무엇보다 현재를 위해 유가치한 일일 따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개똥 역사 철학을 가지고 있다.(정확히는 이를 상기하려고 자주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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