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암 송시열이랑, 백호 윤휴에 꽂혀서, 관련 사료(연보나 행장같은걸 중심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는 중인데, 그 안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그 둘의 '인간적인 성격 차이'가 꽤나 흥미로운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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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시열은 보통 '굽힐 줄을 모르는 꽉막힘의 대명사'로 흔히들 불리고 있고, 그 본인의 학문,정치적 스탠스부터도 실제로 그러했지만, 적어도 '대인 관계적인 차원'에 한정하자면 (설령 비정치적인 영역이라 할지라도) 꽤나 체면치레, 즉 마음에도 없는 예의상 하는 소리를 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애당초 자기 학문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던 그였음에도, 백호를 처음 만난 3일 이후에 '그와 함께 학문을 3일간 논해보니 지금껏 30년 독서한 게 가소로운 것이었다' 며 유난을 떤 것은 그런 태도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아울러 백호와 한번 등을 지게 되었던 이후에도 인사결정권자로서 추천받은 백호의 관직 임용을 딱히 막지도 않았다. 그는 추천받은 백호를 단 한번, '단번에 너무높은 자리를 제수받는 것은 이르다'면서 말렸을 뿐, 그 이후에는 (이단설이란 이유로 사단이 날 수 있다며 주변인들이 꽤나 말렸지만) 오히려 육상산을 추천한 주자의 예를 들먹이며 그 추천을 독려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일찍이 20대부터 정통주자학적 저술에서 멀어진 백호가 한-참 아니꼬왔고 그걸 걸고 넘여졌던 적도 있었던 그의 전력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주류'로서의 자신감, 학자적인 당당함 같은 것을 오히려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할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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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휴는 하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딱딱하고 일견 거칠만큼 꾸밈없었고, 자신이 가진 신념에 어쩌면 우암 이상으로 충실했지만, 오히려 세상물정 모르는 거 아닌가 싶을만큼 주위를 살필 줄 모르는 (일견 경솔한) 성격이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타입이었다. 우암 일파가 남긴 조작의 혐의를 감안한다고 해도 (물론 농담 반이었겠지만) 언젠가 '내가 학문에 대해 세운 공은 우암 못지 않다'는 말을 하다가 우암 일파에게 그 소식이 전해진 후 두고두고 그 말로 꼬투리가 잡혔던 것은 그 태도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동시에.. 윤휴 인생의 굴곡의 원인은 송시열 때문이 맞는 것이겠지만 , 실은 적어도 우리가 아는 '그정도의 고생'까지하게 된 것은 사실 그의 순진한 태도가 한 원인이기도 하였다. 그의 인생에서 꾸준히 소위 '폭풍의 핵'이 되었던 유학관련 저술들도 일단 그 의도만 놓고 본다면 '젊은시절 의심나는 것들을 메모해놓은 독서기'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점을 '교우들과 나누겠답시고'.. 심지어 그 송시열마저도 포함한 이들과 그 의도에 대해 충분한 설득 없이 초장부터 공유해 버림으로서 급작스레 갈등양상부터 만들어버렸고 문제를 키워버렸다. 숫제 학자로 제대로 데뷔하자마자 공격부터 당하는 꼴을 겪어야 했고, 당시 중요한 문인들한테 말마따나 '초장부터 찍히게'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윤휴 본인은 적어도 예송논쟁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러한 우암 계통의 충격적인 대응이 '설득'으로 해결될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윤휴는 우암의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학문에 대한 의문없는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오히려 학문 이해를 저해한다'며 정말로 '순수한 학문관'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는 당시 백호의 학문에 대한 우암의 '이단론'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증오의 색이 짙은지, 그리고 그러한 증오에 (정치적인 이유까지 포함해서) 동조하고 때로는 더 불태운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전혀' 고려하지 못한 순진한 표현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가 봐도 맞는 말이듯) '올바른 생각'이라는 자신감, 아울러 당시 미수 허목, 미촌 윤선거 등의 '소수 동조자'들의 동조에 힘입어 이 문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킬지 (적어도 저술 및 초기 토론기까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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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러한 '각자의 성향'은 그 둘의 성향과 행동을 드러내주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다만 이들의 개성만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오묘한 균형(혹은 불균형)적인 관계는, 이후 완전히 앞뒤 안가린 증오관계로 무너져버린다. 이른바 국가 정체성규모의 정치 갈등, '예송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더 이상 "적당한 불편함" 정도로 그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201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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