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평전과 '균형잡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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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서술에서 특정 인물 등을 '미화와 폄훼 없이 중립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범위에서도 90년대 이후 아주 일상화된 슬로건이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특히 공들여 잘 쓰여진 서술일수록, 저자의 '관점'이 개입되기 마련이며, 그 '관점'에는 (저자 자신의 주장이 어찌되었든) 가치판단이 안 들어갈 수 없다.
종래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채택되곤 한 것이 '공과론-양면성'서술이다. 다시말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보여주자는 방식의 접근법을 시도한 경우다. 그러나 이 또한 결국엔 '공칠과삼'류의 분량-역점 배분의 문제 속에서 결국 한 쪽을 택할 수 밖에 없어, 중립성을 확보하는데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다.(더군다나 세종은, 현대 한국의 조선시대 소비의 중심에 있는 특성상, 특히나 그에 성공하기 힘든 소재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중립적 서술을 그나마 성공시킬 수 있는 한 가지 고전적인 방법은, 서술 대상이 놓인 '역사적 조건-과제'에 역점을 두고 인물의 행적을 묘사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은 결과적으로 해당 인물의 개성 내지 선택의 범주를 축소시키고, 해당 인물을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장본인'으로 나타내게 되기 마련이지만, 균형있는 서술을 이루어내기에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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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 판단컨대 '세종 평전'을 두고 저자가 시도한 '균형잡기'의 전략 또한 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론에서 명시하지는 않은 터라 아주 자신하긴 어렵지만), 저자의 '균형잡기'는 종래 '중립적 서술'의 장에서 자주 차용하던 '공과론-빛과 그림자'전략과는 분명 색채가 다르다. 저자에게 세종은 그 자체로 유능/무능, 선/악의 판단의 대상이기에 앞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시대적 과제에 '성실히'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작은 예시지만, 저자가 세종의 통치 원칙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기점을 '1436년 가뭄-다시말해 세종의 의지 밖의 천재지변'으로 설정한 것은 아주 우연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결국 최근의 '성군 논쟁'에 이은 여러차례 평전 작업들보다 나은 '균형'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던 것도 그 선택을 통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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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에서 중요한 축으로 설정한 '권력과 이념의 대립'이라는 틀 또한, 언뜻 보면, ⓐ 이념이라는 조건 하의 권력 추구라는 선택.. 내지는, ⓑ 권력이라는 조건 하의 이념추구의 지향.. 등의 질적 층위구분을 연상시키지만, 저자는 둘을 굳이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어느쪽이 세종의 '본심/진면목'인지 굳이 밝히려들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자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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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한 세종의 인물평 또한, '성실성'으로 축약될 것인데, 사실 '성실성' 또한 (적어도 역사 서술의 영역에서) '개성'내지는,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한 인물의 특성으로서 잘 다루어지는 키워드는 아니다. ("성실한 사람이 불성실한 사람과 어떻게 차별화된 정치적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을, 과문하지만 지금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의미에서 저자의 작업을 정말 굳이 비판적으로 말해야만 한다면, 세종의 '개성'이 (종래의 여러차례 긍정-부정적으로 재현된 세종 상에 비해) 오히려 선명하지 않게 표현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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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러한 흐릿한 지점들을 모두 감내하였기에, 이 책이 그렇게나 오랜 시간동안, (심지어 최근 몇년 내에도) 여러 차례 시도되었던 '세종 평전' 작업 중, 단연 돋보이는 '균형'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종래의 세종 평전 작업과 명확히 다른 길을 간 작업인지라 '우열'에 대해서는 유보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종래의 세종 평전과 '차별화된' 작업이라는 점 만큼은 아낌없이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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