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걸작선 끝에 보면 저자 자신의 코멘트와, 그에 이어서 이후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한 이들의 짤막한 대담집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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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쇄본 말미의 것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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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상의 정수를 추출한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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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미치타로-교토대학 명예교수
나다 이나다-작가,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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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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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어느 종교학자가 마이니치 저널에 실은 「종교서 북가이드」 같은 글에 "불교에 대해서는 테즈카 오사무의 「붓다」야말로 최고의 입문서일지 모른다"라고 썼더군요. 글 속에서 그 학자는 엘리아데의 「생과 재생」이니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제상」이니 꽤나 어려운 종교서를 늘어 놓고 있던데, 그 중에 테즈카 오사무의 「붓다」가 들어 있는지라 「어라?」하고 생각했습니다. 종교학자의 눈으로 봐도 「붓다」는 불교입문서로 뛰어났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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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공감해요. 활자에 의한 어설픈 불교 입문서보다 「붓다」가 훨씬 불교의 본질에 가깝거든요. 아마도 테즈카 씨는 불교를 무엇보다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명제를 추구한 사상으로 다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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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붓다」의 전편을 관통하는 것은 "죽는 것은 무섭다"는 감정이에요. 우선 주인공 붓다가 소년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강렬하게 느끼고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극명하게 그려집니다. 그 후에도 붓다 외의 다른 캐릭터가 "죽는 것은 무섭다"고 느끼는 모습이 반복해서 그려집니다. 붓다라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 갔나, 또 어떻게 제자들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했나... 그 과정을 독자는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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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아힘사라는 살인귀가 죽음 직전에 붓다와 대화를 나누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제9권, "루리 왕자와의 재회").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다는 아힘사도 딱 한 번 어린아이를 죽이지 않고 놓아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붓다는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면 "나는 어린아이를 살려준 아힘사다!"라고 가슴을 펴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힘사는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죠. 이 에피소드 자체는 테즈카 씨의 창작이지만, 불교가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추구하는 사상이란 것을 상징적인 형태로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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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물론 불교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이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와중에 탄생했습니다. 플라톤도 "철학은 죽음에 대한 준비다" 라고 했어요. 하지만 붓다의 사상은 한층 더 죽음과 마주하기 위한 사상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나는 붓다의 고향인 카필라바스투에 그런 사상을 낳을 만한 토양이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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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무슨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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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붓다가 왕으로 태어나고 자란 카필라바스투는 벼농사가 성했어요. 당시 인도에서 가장 벼농사가 성했던 지역이라더군요. 그리고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자면, 필연적으로 미래를 예측해야만 합니다. 올해 작황은 어떨지, 어떻게 하면 내년의 풍작을 확보할 수 있을지... 벼농사 그 자체에 미래 예측의 요소가 강한 거죠. 그래서 인도 굴지의 벼농사 지대였던 카필라바스투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욕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강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기에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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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네에. 붓다는 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죽음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다 출가에 이르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카필라바스투의 지역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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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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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죽음을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만화의 세계에선 달리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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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만화뿐만 아니라 어떤 표현 분야에도 죽음의 문제를 추구한 작품 자체가 현대에는 별로 없어요. 현대는 아무래도 죽음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강한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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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그렇죠. 타인의 죽음을 접할 기회가 예전에 비해 극히 적은 탓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이 죽음을 직시하려 하지 않아요. 죽음을 불길한 것으로 여겨 은폐하고 일상생활에서는 가능한 의식하지 않으려 하죠. 그러다 보니 죽음은 추상화되어 제대로 실감하지 못 해요. 난 얼마 전 남동생을 잃었는데요, 그때 멋도 뭣도 없는, 현대 일본식 화장에 강한 위화감과 공포감을 느꼈어요. 시신을 태우는 불은 특별히 성스러운 불도 뭐도 아닌, 그저 중유를 사용한 물리적인 불이에요. 그런 화장에는 한 사람이 죽었다는 구체적인 느낌이 없어요. 동생의 유골과 마주했을 때, 나는 죽음의 공포를 강렬하게 느꼈어요. 죽어서 이렇게 불타게 된다면 죽는 것은 무섭다고... 그래서 그 후에 「붓다」를 처음 읽었을 때, 그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죽는 것은 무섭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어요.
오키나와의 쿠메지마에 갔을 때 그곳의 장로격인 한 노인과 대화하던 중, 인상적인 말을 들었어요. 그 노인은 "야마토에서 오키나와로 건너온 온갖 새로운 풍습 중에 화장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말을 내게 하더군요. 자신이 죽은 후 유해가 불에 탈 것이 무섭다는 거예요. 이런 감수성을 대부분의 일본인은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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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메몬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하위징아의 유명한 말이 있는데요,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건 그것이 보다 좋은 생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산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죽음을 외면하기만 하는 사람은 생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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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죽음을 은폐하려는 사회다 보니 요즘 젊은이는 주변 사람의 죽음을 인생에서 처음 맞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이 엄청납니다. 죽음에 직면하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것을 일절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89년에 일어났던 「여아 연쇄 살인 사건」의 미야자키 츠토무는 재판 기록에 따르면 자신을 예뻐해줬던 조부의 죽음에 직면한 뒤로 죽음이란 것에 이상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흥미가 마침내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거죠. 조부의 죽음과 어린 여자 아이를 살해하는 것-이 두 가지 사이에는 얼핏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지만 나는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지 못 하다 보니 현실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과도한 충격을 받아 '쇼트'해 버린 거죠.
나다 - 고도성장 시대에서 버블 시대를 거쳐 일본인은 이른바 "죽음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야겠죠. 「붓다」는 그러기 위한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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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늘 고뇌하는 붓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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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붓다」에는 붓다 사상의 정수가 가득 들어 있어요. 가령 전편의 모두에 등장했고, 이야기 종반에 인상적인 형태로 다시 그려진, 토끼가 스스로 몸을 던져 굶주린 수행승에게 잡아먹히는 에피소드. 거기에 표현된 것은 자기희생의 정신만은 아니에요.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서로 관계하고 의존하며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불교의 「인연」 사상의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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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네에, 그 사상은 붓다 자신의 대사로도 몇 번 등장해요. "인간이 이 자연 속에 있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어서 살아있는 것이다. 모든 것과 관계를 가지고..." (제6권, "야타라 이야기(2)")라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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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맞아요. 거기에는 강한 자가 승리하고 약한 자가 진다는 세계관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관이 잇어요. 뛰어난 인문지리학자이기도 했던 소우카 학회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츠네사부로는 「인생 지리학」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공존적, 융화적으로 다루는 독자적인 사상을 전개하고 있어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그 시선은 이콜로지 사상의 선구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사실 그건 불교의 「인연」 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붓다야말로 이콜로지 사상의 진정한 선구자인 셈이죠. 마키구치나 크로포토킨 등, 20세기 인문 지리학자들이 겨우 도달한 자연관이 이미 붓다의 사상 속에 잇었어요. 그리고 「붓다」에도 그 내용이 충실하게 그려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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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 그리고 내가 신선하게 느낀 건 테즈카 씨는 붓다를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고뇌하는 산 인간으로 그렸다는 점이에요. 불교에 어두운 사람은 깨달음을 얻고 난 후의 붓다는 전혀 고뇌하지 않는 그야말로 신 같은 존재라 믿는 경향이 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도 역시 붓다는 늘 고뇌했습니다. 단 깨달음을 얻기 전과는 고뇌의 질이 달랐죠. 자신의 번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게 되었지만 사람들을 어떻게 고통에서 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평생 고민합니다. 테즈카 시는 바로 그 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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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 분명 우리 현대 일본인은 「붓다」에 의해 비로소 붓다를 한 인간으로 다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붓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아마 머릿속에 제일 먼저 테즈카 씨가 그린 붓다가 떠오를 거예요(웃음).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붓다상은 이제까지 활자로는 그려진 적이 없으니까요.
201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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