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37권, 중종 14년 12월 16일 병자 1번째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년
남곤이 말했다.

민간에서 "소학(小學)"의 가르침을 힘써 행하게 된 것은 다 저들[기묘사림]이 주도한 일이었는데, 이 때문에 저들이 귀양간 뒤로 무지한 백성들이 모두 '이들이 죄를 얻은 것은 "소학"의 가르침을 행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이, 듣기에 심히 편치가 않습니다.
조광조 등이 죄를 얻은 것이 "소학"의 가르침을 행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소학을 읽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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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란 말이 유행하면서, 그 역사적 어원을 탐색하거나, 심지어 이를 긍정적으로 전유(?)하는 움직임마저도, (최소한 주변에서는) 심심찮게 만나게 되기도 한다. 어느쪽의 이야기도 유의미하지만, 개인적으로 '꼰대'를, '옛 것에 대한 숭배'로, 전통/호고/복벽주의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에는 그리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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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세대인 자신에게 익숙한 편안함/관성'과 '전통 그 자체'(내지 전통의 원형성에 대한 지향)는 그 영역이 겹치기는 쉬우나 분명 다른 것이며, 나름 '옛 것' 많이 밝히는(?) 조선시기라고 해서 딱히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신세대'가 적극적으로 전통을 기성세대 이상으로 강경하게 자기 정당화의 무기로 삼는다면, 그 직전까지 전통과 관성을 강조해 온 기성세대가 하루아침에 전통의 파괴자로 돌변하는 것도, 과거의 경험을 통해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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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졌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람도 많은) "소학"이 16세기 중후반에 잠시나마 지배층 사회에서 명시적으로 배격되기 시작한 아이러니컬한 상황도 그 비슷한 사례다. "소학"은 이미 원대부터 주희 학단의 교재로 중시되었고, 고려 말부터 지식인 사회에서 꾸준히 보급되었던 만큼, 비록 조선 초 지식인 사회의 시큰둥한 반응이 문제시되었을지언정, 남곤이라고 그 중요성을 명시적으로 부정했을 리 없다.(이 자료를 두고 좀 예전에는 '16세기 이전까지는 소학이 덜 중요했다는 증거'로 거론하기도 하였는데, 나름의 의미가 있는 설명이지만 액면 그대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를 '신세대' 조광조가 적극적으로 운동의 아이콘으로 활용했던만큼, 이들의 실각 후, "소학"자체를 (별 이유도 없이) 문제시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남곤 정도니까, 그 이유라도 말하는 것이고, 그 아랫세대 쯤에서는 그냥 이유도 없이 꺼리는 분위기가 생기게 된다 - 물론 얼마되지 않아 기묘사림의 복권과 함께 "소학"의 권위도 되돌아오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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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뜬금없는 예시지만, '손님,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보다 '손님,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쪽이 손님을 높여주는 표현이라고 종업원이 설득하려 해도, 나아가 그게 정말 사실이라고 해도, '꼰대 손님'이 '나오셨습니다'를 쓰지 않은 종업원이 '예의가 없다'는 입장을 끝내 양보하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다. 사실 '예의' 내지는 '존대의 관습적 규범'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자체는 당초부터 '꼰대 손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권위를 장악하기 위한 정당화 수단이 '존대어-예의-규범'이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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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생각하면, 딱히 중시하는 메시지의 연원이 얼마나 오래냐/새로우냐 여부는, 세대의 신/구 문제와 상관이 없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핵심은 결국 그 메시지가 누구를 향한 것이고,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며, 이로써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 정도에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갑자기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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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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