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이른 연말결산.. 주저리주저리.
생각해보니 너무 정신이 없는 한 해였다. 변변찮은 업적에 괜히 공치사하는것 같아서 머쓱한 기분도 들지만, 좌우간 올해 써 놓은 다이어리라도 복기하면서 한 해를 정리해 보고 싶었다.
1~6월.
: 부스러기같은 반년. 서평 하나 공저 둘.
1) 연초 한국연구원 웹진에 들어간 서평을 하나 썼던게 기억이 난다. 책 자체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과 별도로, 솔직히 '할말을 하다가 말은것 같은' 이 서평이 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애매하게' 비판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책도 아니거니와, '작심하고' 논쟁적으로 쓰기에도 제한된 지면-내 스스로의 물적/심적 준비상태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https://www.webzineriks.or.kr/post/%EC%A1%B0%EC%84%A0%EC%A0%84%EA%B8%B0-%EB%AC%B8%EB%AA%85%EC%9D%98%EC%8B%9D-%EC%9D%84-%EB%8B%A4%EB%A3%AC%EB%8B%A4%EB%8A%94-%EB%82%9C%EC%A0%9C-%EC%A0%95%EC%B6%9C%ED%97%8C-2024-%E3%80%8E%EC%A1%B0%EC%84%A0%EC%A0%84%EA%B8%B0-%EB%AC%B8%EB%AA%85%EC%A0%84%ED%99%98%EA%B3%BC-%EB%8F%99%EA%B5%AD%EB%AC%B8%EB%AA%85%EC%9D%98-%EC%A7%80%ED%8F%89%E3%80%8F-%EC%84%9C%ED%8F%89-%EC%9D%B4%EC%83%81%EB%AF%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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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저 작업 둘을 마무리한 것도 기억이 난다.
"정도전 연구입문" (삼봉연구원 편, 주류성)
"정도전의 꿈과 종로 - 과거와 미래의 만남" (박홍규 외, 신서원)
-여러번 반복하지만, 정도전하고 이렇게나 깊게 얽히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내년에도 두 단체 모두에서 발표를 하고, 공저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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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럼에도 상반기는 정말 부스러기같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상반기에만 아까 말한 공저2편에... 발표 3건.. 아마 5번인가 6번인가 헷갈리는 토론과, 그보단 확실히 많은 숫자의 심사.. 이런거 뺴고는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이...."틈틈이 세미나 일정...그와중 틈틈이 대중강연... 그와중 틈틈이 학회업무.. 그와중 틈틈이 각종 원서 작업.. 그 와중 짤막한 알바들 몇몇.." 이런걸로 꽉꽉 채워져있었기 떄문이다...
진짜 끝나고보니 뭘 제대로 해놓은게 하나도 없는데, 달력이 꽉꽉 채워져있던 상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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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래도 대학전공의 한문강독 수업을 맡던 게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사라진게 참 섭섭했던 기억.. 한문에 대한 기초도 흥미도 거의 제로인 학생들을 부추겨서 조금이라도 공부란걸 시켜보려고 갖은 궁리를 했던 시간이.. 일단 고생도 고생이었지만 어떤 작은 애정같은것도 남겨 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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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월
: '털어내기'의 반년. 논문 4편을 썼다.(한 편은 연말 간기로 출간예정
2025 정도전의 집터 위치 문제와 '수진방.사복시 전승' 형성, 서울과역사 120
2025 중종대 풍속 위기론과 징계를 통한 경계심 고양, 학림 56
2025 15세기 효행자 천거 확대와 덕행 중심 인사론, 사림 94
2025 16세기 조선의 단지(斷指) 확산과 양분화된 평가 정착, 역사민속학(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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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술연구교수 A가 되었던 게 가장 큰 변화. 솔직히 그 자체로는 일상에 큰 변화를 부르지는 않았다. 어차피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신세야 여전하고. 강의/발표/토론/세미나/그외 잡일.. 등등이 딱히 변한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젠 뭘 좀 해야지'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긴 했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서, 오히려 좀 더 과감하게 털어낸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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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문을 여러 편 쓰긴 했는데, 대체로는 폴더 한구석이든, 머릿속이든, 어디 한켠에 묻어두었던 원고를 털어내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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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 집터 논문 기억이 난다. '정도전의 집은 파가저택되었고, 그 자리에 수진방/사복시가 들어섰다'는, 정도전 당대 기록으로는 신뢰하기 힘든 '설화'가 16세기 이후 기록에서 등장해, 시기를 지나 보충-변형되었다는 내용이다. (예전 발표했던 원고를, 공저에다가는 거의 그대로 실었고, 한켠에서 논문 버전으로 대폭 다듬어서 같은 시기에 투고했다.).
심사과정에서 여러 비판도 많이 받았고, 덕분에 엄청 많이 고쳤지만, 나름대로는 의욕적으로 작업한 글이었다. 일단 나 부터가 어디가서 '사복시 터가 정도전의 집터'라는 이야기를 학부시절부터 워낙 크고작은 강의 등에서 너무 의심없는 사실처럼 많이 들어왔던 터라(일단 종로구에서 그렇게 안내문을 썼다).. 적어도 '이게 아주 뚜렷한 사실은 아니다'라는 점 만큼은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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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대 풍속 위기론과 징계' 논문은 박사논문의 후속편이라 갑절로 힘들었던 기억. 그 후 출간된 '효행자 천거'는 박사논문에서 지나가듯 언급한 것을 독자적인 논의로 보충하고 심화한 작업이었는데, 그래도 큰 줄거리의 틀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고생은 덜 했지만, 중종대 형정론..문제는 정말로 (연구사적으로도, 내 개인 작업으로도) '미답지'에 가깝다보니, 자료를 모아놓고도 '전체 상'을 확정짓지 못해서 고생을 아주 많이 했다.
결국 '16세기로 갈 수록 엄격해진 도덕적인 기준을 형벌로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 여러 논의끝에 나타났는데, 정작 그 대상은 (종래 교화/형벌의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던 '민 전체'가 아닌) 사족에 집중되었다.' 라고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긴 했다. '사족에 대한/사족에 의한 통치 문제'가 (실제로 성공했든 안 했든), 15세기와 구분된 16세기의 관건이었다는 아주 흐릿한 상 정도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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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이 논문이 끝나니까 성종대를 주로 다루는 '효행자 천거' 논문이나, '16세기 단지' 논문을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힌 것도 있었다.
거칠게 정리하면, 15세기에 '국가 건설기 양인 대상의 교화 정책'이 제도적으로 견인되었는데, 15세기의 기획과 아주 일치한 것은 아닌 형태로, 사족을 중심으로 효/열 같은 '유교 전통'의 언어들이 상징 자원으로 정착된 현상이 이른바 16세기 '사족을 중심으로 한 도덕성 제고 운동' 아니겠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써놓고 보니 역시 더 정리가 되어야겠다 싶긴 한데.. 어쨌든 그 상을 토대로, '15세기 말의 <효자를 진짜로 학술관료로 바로 뽑아보려고 했던 해프닝>' 문제라든지... 15세기까지 의료적 수단이 없는 지방-평민들의 효행이었던 손가락 자르기가, 16세기 서울-사족들에 의해서 행해지게 된 문제.. 등등을 거칠게나마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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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며칠 남지 않은 연말까지도 이런저런 일이 남아있다. 아까 단지 원고도 2교상태지만 일단 교정을 좀 봐야한다. 그리고 (올 상반기 발표했던) '또 정도전' 원고 하나를 논문 투고 형식으로 완료하는 마감 일정이 있고, 내년 예정된 16세기 지식인 관련 학술대회에 조광조 관련한 발표를 하게 되어서 그 계획서를 쓰는 일.. 등등이 걸려있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지난학기보다는 좀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건, 일단 '해 놓은 일'이란게 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은 작업이라도 진전을 시키는 쪽이 보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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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시작할 때 "균형잡힌 한 해"가 되게 해 달라고 내심 기도했는데, 한 해에 정말 균형이 잡혔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전반기에 엎어진걸 후반기에 수습했다'는 의미에서의 (기대와는 다른) '균형'이 생긴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썼던 모든 논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두 편중 하나가, 24년에 Korea Journal에 냈던 단지 논문 "Unanticipated_Achievements"였는데, (나머지 하나는 23년에 낸 연구사 논문이다)......결국 역사의 흐름이란게 '노력한다면, 분명히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만..그게 당사자가 노력한 그 방향대로 변한다는 뜻은 아닌' 그런거 아니겠나 싶다...
논문을 쓰다보니 생각하게 되는 개똥 철학이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그 '예기치못한 성취'가, 너무 무리하지 않은 형태로, 내가 충분히 기껍게 받아들일수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괜히 기원해 본다.
2025년 결산
2025. 12. 26.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