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메모

정옥자, 1990, "조선후기문화운동사", 일조각.

평시(lazyreader) 2019. 1. 3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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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진학의 갈림기에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역사라는 학문은 버거운 상대였다. 동숭동 문리대시절의 방황과 탐색 끝에 졸업 후 일찌감치 평범한 가정주부의 길을 택한 것도 그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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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새며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가정 꾸리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서 겨우 잔주접을 면한 두 아이를 떼어 놓고 30대 중반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만학도가 되었을 때의 감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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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지각생이라는 자격지심에서 10여년의 공백기를 메워야겠다는 갈증같은 조바심 속에, 학문의 길이 진정 무엇이지도 모르는 채, 오직 공부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매진해 온 지난 15년의 세월이 차곡차곡 오늘의 나를 이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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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슨 역사냐 싶은 따가운 눈총에도 이 길 이외에 더 나은 선택은 없다는 일념으로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때때로 엄습하는 회의와 절망, 바닷가 모래밭에서 금모래 줍기같은 자료찾기의 고된 작업도 이 길만이 유일한 귀의처라는 다짐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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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의 사교생활도 외면한 채 학교와 집 사이를 동동걸음 치면서 학자이기 전에 주부이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어느 것도 흡족한 것이 못 되었다. 다 이루려는 자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는 진부한말이, 얻은 것이 있으면 잃기 마련이고 잃어으면 얻으리라는 당연한 이치가 새삼스러운 진리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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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남녀공학의 대학에 진학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좋은 동기생들을 만나 그분들의 남녀를 초월한 우정과 성원에 힘입은 바 컸고 고달픈 숙생의 좋은 벗이 되어 주고 있음은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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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엄마의 눈길과 보살핌에 주렸을 다 큰 두 아이들, 석사논문 쓸 때 겨우 돐을 넘기고 무릎에서 안 떨어지려 해서 애를 먹이던 막내딸 동세, 아이와 괴팍한 아내를 포용하여 늘 외조를 아끼지 않은 평생의 반려자에게 송구함을 이 책으로 대신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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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 1990, "조선후기문화운동사", 일조각.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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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통 '박사논문 재 편집본'을 읽을때면 그 '서문'을 주목하곤 하는데, 그 안에서는 보통 그 사람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결의 등이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의미심장한 정옥자 선생의 그것을, 큰 맘 먹고 '조선후기 문화운동사'를 (이미 읽기야 읽었지만) 사 놓은 기념으로 옮겨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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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 학우들은 물론이거니와, 공부를 시작할까 말까 고민하는,단순히 '현실적인 여건 문제로' 공부의 때를 놓쳤다고 생각하거나, 회의감에 사무치거나, 여하간 여러가지 '현실적인' 회의감에 봉착 하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라고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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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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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정옥자 선생은 여러 지면을 통해서 일종의 '에세이' 형식의 글을 남겨왔다. 

가령 "역사 에세이"(문이당, 1996)부터 시작해서,  "오늘이 역사다"(현암사, 2004)에서 쓰여져있는 산문들이라든지, "공부의 즐거움"(위즈덤하우스, 2006)에 일부 인터뷰 등, 비교적 여러 '수필'들을 누차 출간해오신 바 있다.

 

2)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정옥자 선생은 정리된 형식으로, 굳이 비유하자면 강만길 선생의 "역사가의 시간"에 준하는 밀도있는 자서전을 만나고 싶은 분이다. 특히 최근 수년전부터 강하게 가져 왔던 생각이다. (사실 그 만큼 "역사가의 시간"이 한국인 역사가의 자서전 중에서는 모범이라고 할 만큼 좋았던 탓이기도...)

그분 특유의 "민족주의적" 역사관 이상으로, 그가 가진 여러 '최초'라는 타이틀만큼이나 간단치는 않았을 '여성 연구자로서의 삶'의 기록들이, 2019년 많은 후배연구자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안 내실거 같긴 하다)

 

2019.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