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평등'
"조선왕조의 건국을 주도한 세력이 건국의 이념적 근거로 내세운 유교정치사상은 명분론과 민본사상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양자는 현실정치에서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었다. 유교에서는 명분을 바로 잡는 것이 곧 민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였고, 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는 한 통치의 명분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명분론과 민본사상이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음과 같은 공자와 주자의 언급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논어 자로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송사 열전 주희전 天下之務 莫大於恤民 而恤民之本 在人君正心術以立紀綱 "
이석규, 2000, '조선초기의 구언', "한국사상사학" 15.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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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일견 당연하지만. 유교정치 사회사상에 대한 감각에 익숙치 않은 이에게는 어색하게 들릴 수 있는 그런 이야기.
현대 평등감각에 비추어 볼 때 '민본정치'의 측면과, 신분제적 명분론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말하자면 '왜 백성이 근본이라면서, 신분제적 질서로 백성을 얽메는 것에 찬성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대표하듯, 민본과 신분제가 모순된다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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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가장 '쉽게' 내릴 수 있는 정답은 '당초 그 민본은 권력쟁취의 구실일 뿐, 진짜로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민본사상이 아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답은 쉽고 간편하지만 그야말로 너무 쉽고 간편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사회역학으로 민본의 레토릭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 '왜 굳이' 구실로서 민본을 택했는지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해서라는 '구실'은 분명 공허한 것이거나 혹은 그 자체로 신분제와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중요한것은 그 타당/부당을 전제로 역사적 진퇴를 논하는 문제보다도 유교사회사상이 어떤 맥락으로 활용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구실의 측면을 전제하더라도, 유교사회사상에서 신분제적 질서를 전제로 한 명분론은 배부른 양반님네들이 자기들만 문식을 독차지하면서 그 입으로 '민본'을 논하는 상황은 분명 탈시대적 맥락에서 보자면 극도의 기만이지만, 적어도 그네들 나름의 가치체계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방법론적 허위/기만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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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평등'이 잣대로 단순화되어선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명분론의 강화와 민본론의 연관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명분론이 엄격하게 구성되지 않은 고려-조선초기의 정치가들이 마치 조선의 유자들보다 진전된 평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도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의 흐름을 볼 때 '사회적 평등성'을 놓고 단순화시켜선 확실한 혼란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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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만 1~3에서 제시한 '당시의 가치관에 대한 존중'도 사정이 단순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성리학적 사회이론 내에 존재하는 '명분론'의 맥락과 '민본'간의 정합성을, 일반적으로 공감해 온 당대적 맥락과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 소수파가 항상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소위 조선 사회에서 꾸준히 전개되어, 특히 후기에 들어 본격화된 신분제개혁론은 그런 '반대파'의 사상으로서 새길 만 하다.
동시에 이러한 명분론에 반대하는 의미의 평등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더 나아가 정치가들이 (구실이나마) '민본'을 채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준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그 요인으로 많이 꼽혀온 민의 의식 성장, 더 나아가 그것을 거시적으로 가능하게 해 준 장기적인 생산력 발전의 양상 등도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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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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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교'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혹은 전근대인 '자신의 입장-진정성'에 공감을 어디까지 형성해야 하는가 문제는 (*당연히 지금까지도 해결되지않은) 꽤 오래고-깊은 고민거리였다. 제대로 말하자면 '전공 밖에 존재한 광범위한 유교 혐오'에 대한, '전공 내에 존재한 광범위한 유교에 대한 낭만'.. 둘 다에 한창 나는 꽤나 오래도록 지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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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인적으로 최근 유명해진(?) 김영민 교수의 2년전 논어 칼럼 "생각은 죽는다, ‘논어’도 죽었을까"를 접한 순간이 엉켜있는 팽팽한 긴장에 대한 작은 위로?의 계기였음을 기억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11267.html)- 개인적으로 그 긍정/부정론에 대해 이 글만큼 '섬세하고-적당히 회의적이게' 잘 쓴 글은, (저자 자신의 다른 칼럼까지 포함해서) 많이 보지 못했다.-
어느쪽이든, 좀 길게 쳐서 3년정도 이어졌던 긴장이, 조금이나마 '납득'의 세계로 안정화되었던 순간이었다. 어차피 죽은 것을 죽었노라 인정한다면, 그것이 낭만의 대상이냐 증오의 대상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무의미-무력한' 문제가 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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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