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 2018 "한국 괴물 백과" 워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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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이 진정한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적인 정신과 한국적인 사상이 무엇인지 정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적인 판타지 세계의 모습과 그 세계의 규칙, 특징, 기술 수준, 제도, 신분 계층 같은 것을 차근차근 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작가들이 그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꾸밀 것이라 했다. 누구는 열심히 연구하고 토론해 세계를 만들고, 누구는 그렇게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열심히 소설을 쓴다. 그러다 보면 그게 진정한 한국형 판타지가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생각에 반대하는 소수파에 속했다. 그렇게 사상과 원리에 따라 세계를 구민 뒤 그 세계 속에 이야기를 집어넣는 방식은 너무나 원대한 꿈이고 품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힘든 일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다들 이것이 정말 한국적이라 공감하는 세계를 합의 끝에 만들어낸다는 것도 이상해 보였다. 그런 일은 아무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사상, 규칙, 세계를 만들어주면 아래에서는 거기에 따라 이야기를 만든다는 발상은 얼핏 체계적이고 그럴듯해 보였지만 반대로 답답하고 지겨운 일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그런 식으로 한국형 판타지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한국 전설 속의 괴물이나 신기한 보물 같은 것을 목록으로 정리해두고, 그런 자료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같이 돌려 보는 것 정도가 실용적인 방법이라 주장했다. 그렇게 여러 작가가 저마다 자기 생각 자기 이야기 속에서 이리저리 활용하다 보면 저연히 그 중에 진정한 한국형 판타지 같아 보이는 것도 점차 나타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늘어놓고 아래에서부터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자연히 그에 따라 사상, 규칙, 세계 등 이야기 위에 있는 것도 생긴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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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인 조사 자료나 학술 논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이 무렵 한국의 괴물 전설을 밝히는 학술 논문들은 주로 구비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극히 "한국구비문학대계"나 그와 비슷한 현대에 채록된 이야기 자료를 근거로 괴물의 특징이나 성격에 관해 이야기하는 논문들을 나는 주로 접했다.
그런데 "한국구비문학대계"만 해도 1970년대에 말이 되어서야 조사가 시작된 자료다. 1970년 말이면 이미 한국 괴물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러 편 개봉되고,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대중문화 매체를 통해서도 여러 전설이 각색되어 소개된 뒤였다. 그렇다면 이런 시점에 어떤 지역의 노인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조사한다 해도 그 이야기는 현대의 작가들이 가공하고 꾸민 영화, 소설 TV, 라디오의 영향을 받은 내용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흉측한 귀신의 모습을 조사할 때 무심코 며칠 전에 본 영화 속 귀신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조사하면서 정확히 어느 기록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원전을 정확히 밝히면서 한국 괴물 이야기를 모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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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2018 "한국 괴물 백과" 워크룸, 1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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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사회-문화의 가치"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이 결국 해당 분야 종사자의 업이라는 것은 고민거리도 못 되지만, 그에 반해 적어도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오랜시간 나는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되어 왔다.
그걸 늘 의식해 온 까닭에, 내 스스로는 그 방법에 대한 굉장히 오래된 철학-역사학(그리고 그 중간쯤? 혹은 둘 다가 아닌 애매한 곳에 넓게 자리잡은 문학) 간의 긴장에 대해서도 제법 경청해 온 편이다.
2) 그 긴장을 요약한다면 둘 정도 인 것 같다.
역사학이 오래 견지해 온 '개별 자료의 수집이 특정 전통의, 타 전통과 구별되는 '특징'을 자연스럽게 도출해 낸다'는 입장. 그리고, ('한국학' 필드를 전제로 한) 철학/사회과학 분야에서 견지해 온, 해당 전통의 특성론을 일단 가설값으로 꾸준히 제시하되, 그 가설값을 뒷받침-수정하는 논거로서 개별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는 입장의 차이 말이다.
(그 가치의 우열과 별도로, 사실 철학/사회과학에서 제기될 연역적 입장은, 언제고 스스로 세워둔 그 로직이 '한국적 특성'이라는 범주 자체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늘 함유하고 있다. 한국학 같은 '지역성'을 장르의 기본 전제로 한 링에서는 그 '센터'자리를 자주 역사학 혹 문학-중에서 1차 텍스트 다루는 필드가 가져가곤 하는데, 나는 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3) 역사학, 그 안에서도 자국사 다루는 필드에 몸담고 있으면, 아무래도 귀납적 케이스 수집에 '익숙한' 성향을 띨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 케이스의 가치/그에 집중력을 어디까지 소모시켜야 하는가. 문제는 굉장히 오랜시간 스스로를 갈등케 만든 일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메시지'가 추출되지 않은 순수한 과거의 흔적 자체에는, 동료들 중에서는 별로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당장 눈앞에 가시화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수백년 전의 어떤 부분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았다는 것 자체에는 사실 큰 감동이 없다. 그 까닭에 '사실관계' 그 자체에 감탄할 수 있고, 그 사실관계 파편을 목적없이 모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건대 사실은 지금까지도 거부감과 질투심이 섞인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지금쯤 오니 우회적으로 "자질구레한 것들에도 그 의미를 잘 도출할 수 있게"된 편이지만, 실은 그 '의미 도출癖'마저도 그 사실 자체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그조차도 상당한 훈련을 거쳐 최근에야 틀을 갖추는 중인 테크닉이기도 하다)
4) 오히려 최근 들어서 그 갈등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역시 내가 밥먹고 살아야 하는 판이 그런 귀납의 판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탓도 컸고, 수년 전 석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국 핵심 없는 언어유희'라는 자조 속에서 크게 좌절한 탓도 컸고.. 어쨌든 그 푸닥거리 속에서 정말 간신히 '논리'와 '사실나열'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안정시킨 참이다.
- 충격적이게도. 박사 이후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가 답사를 사랑하는 호고주의자에, 개별 과거 사실을 나열하는 게 당초 익숙하게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 진짜 역덕후를 안 만나봤구나 생각/ 내 나름의 실천이 빛을 발한 것인가? 생각이 겹침과 동시에. 사람은 상대적-가변적-다면적이기 마련이라는 내 인간관을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5) 대충 정리된 바는 지루하지만 어쩔 수 없는, '둘다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그 차이를 굳이 드러낸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싸움에 비유한다면, 스스로의 DB를 잘 갖추는 것은 튼튼한 무기이며", "스스로의 방법론이 있는 것은 그 무기를 다루는 테크닉이다" 정도의 양립성일까. 정말 고도로 단련된 테크닉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맨손으로도 중무장한 사람을 이길 수 있고, 무기가 정말 좋으면 초심자 조차도 달인을 쓰러뜨릴 수 있다.
물론 역사학 필드의 오랜 전통은 그 "물리적 무기"를 모으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평가할 때에도 그 무기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를 1차로 보는 걸 "더 가치있는 일"로 여기겠지만(그 때문에, 본의아니게 타전공 종사자를 만나면 그 입장을 대변하게 되지만), 어쨌든 원시인에게 총과 총알을 따로 쥐어줘봤자 쇠몽둥이 쇠조각에 불과한것처럼, 테크닉의 연마도 필요한 것이다.
6) 사설이 무척 길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특정 문화적 전통을 밝히는 1차적 행위로서의 사실관계 나열/DB구축의 가치에 대해서, ('부정'까진 해본 적 없지만) '회의'와 '긍정'사이에서 꽤 오랜시간 갈등해왔다. 그 까닭에, 그 결론인 "생각보다는 훨씬 중요한 한 축이다"는 입장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상기하고자 한다. 해당 '백과'의 존재가 참으로 반갑고도 기쁜 이유이다.
2019.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