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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초 관료층의 사회 경제적 기반을 조사하면서 신흥사대부설에서 말하는 지배층의 대폭적인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어떤 정체성이나 안정성과 같은 역사 서술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분권적인 성격인 농후한 고려 전기와 중앙집권체제가 훨씬 강해진 조선 전기의 차이점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경제 세력들의 등장을,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내재적 발전론으로 설명할 수 없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전근대 중앙집권관료체제가 사회 분화 등의 여러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 역사사회학자 Eigenstadt의 연구를 해석의 틀로 빌려, 고려 일대를 통해서 이루어진 지방세력의 약화와 강력한 중앙지배층의 성장을 기점으로 해서, 조선초기 중앙집권체제의 강화가 결국 중앙지배층의 권익을 반영하는 것으로 잠정적으로나마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Eisentadt는 Weber를 따라 문화 체계를 거의 독립적인 변수로 내세웠지만 나의 입장은 문화적 현상을 실질적 사회 정치적 이해관계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말선초의 유학 사상의 여러 갈래를 검토한 결과 개인의 수신과 지방 엘리트 중심의 향약과 같은 반자치적인 조직을 통해서 사회를 재건하려던 남송 이래의 정주성리학 만큼이나 중앙의 통치력을 이용해 사회를 개혁하려던 북송과 같은 고문학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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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건국을 연구하면서 15세기의 유학은 생각보다 다양한 것을 알게 된 나는 조선의 유학을 비좁고 탄력성 없는 정주성리학의 정통론으로 묘사하고 그러한 정통론 때문에 조선왕조가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했다고 보는 미국 한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에 불만을 느꼈다. 철학적 사유의 전개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권양촌이나 이퇴계와 이율곡, 송우암과 같은 몇 명의 사상가들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사(history of idea)의 접근방법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중국과 일본의 복잡성을 논하는 UCLA의 동료 교수들의 연구에 힘입어 Annales 학파에서 말하는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 즉 철학적 저서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등의 폭넓은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을 동원해서 다시 검토해보면 통론에서 말하는 일변도의 정주성리학 정통론과는 달리 사회계층과 사회 정치적 위치,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하고 활력 있는 정신적 세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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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의 구조나 운영보다 내용에 중점을 두고 중국의 명청 과거제도와 조선의 과거제도를 비교하면...명청 전반기에는 시를 짓는것을 부수적으로 여기전 정주의 입장을 취하지만... 조선의 문과에서는 거의 시종일관하게 중장에서 시나 부를 짓는 시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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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B 던컨, 2003, 서양 사학과 한국 전근대사 "한국사 연구방법의 새로운 모색" 경인문화사
(2002. 6 국제학술회의 발표원고의 재수록) 70~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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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아 던컨 선생의 대학원 강좌를 몇 학기 정도 수강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때 누차 강조하던 내용이었는데, 우연히 눈에 띄어 집어든 책에서 좀 더 깔끔히 정리된 것을 보니 새삼 반가운 기분이다.
2) 해당 인용문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듯이, 던컨 선생의 핵심논지는 단순히 "왕조교체의 연속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국을 일으킨 기반으로서의 지배층 교체'만을 부정할 뿐, 중앙정치제도 및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고하고 있으며, 그 사회 변화를 추동한 정신적 기반으로서의 ('북송 고문학'이 기반이 된) 성리학의 역할을 적어도 흔히 오해받는(혹은 이상한 대목에서 찬양받는) 바 보다는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좀 나면 아이젠슈타트도 검토를 좀 해볼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던컨이 비판받으면서 함께 비판을 받았던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일독의 가치가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3) 이와 별도로 사소한 것으로, 기억도 나지 않는 석사생 시절 던컨선생의 수업시간에
"저는 사상에 대해 관심이 있기는 한데, 지식인 개인의 실천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도무지 신뢰가 안 가고, 오히려 사회의 여러 변화가 제반 문화현상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지식인의 작업으로 수렴되는데 관심이 있다" 고 하자.
"그러면 평시군의 관심사는 '사상사(history of idea)'가 아니라,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와 '문화사(cultural history)'의 중간 쯤 있는 것이라고 하는게 맞겠네"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던컨 선생의 규정법에서는 문화사는 그렇다치고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에 대한 개념정의가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이 글에서도 나오듯이, "철학적 저서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등의 폭넓은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를 정의내리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도 던컨 선생의 그 답변은 '나의 관심 방법론'같은 것을 좀 자세히 설명할 때 요긴한 방법으로 활용 중이다.
2019.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