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관련 잡담

명나라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실망

평시(lazyreader) 2023. 11.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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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찍이 맹자가 쓴 책을 읽어 보니 “그 시를 외우고 그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이 때문에 그 시대를 논하는 것이니 이는 옛날의 고인을 벗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비가 천고의 벗을 사귀고자 한다면 그 시대를 논할 뿐만 아니라 또 그 당대의 행적을 논하고 반드시 그가 다녀갔던 곳을 직접 가 보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마음속에 진정으로 감흥이 일어 유익함이 있는 것이다.
지금 마침내 아득히 동쪽 모퉁이에 살면서 읽는 것은 중국의 책이고 지키는 것은 옛 사람들이 남긴 찌꺼기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와서 그 일을 말할 경우에, 마치 원거(鶢鶋)가 풍악 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하거나 소경이 단청(丹靑)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 그 지향할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마땅히 그 땅에 가서 지극히 크고 지극히 밝은 곳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 하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시경》과 《서경》에 실려 있는 내용이 우리를 속인 것이 아니고 자신이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더 많이 알게 해 준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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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당문집"(성현), 권6, 서장관으로 북경에 가는 권숙강(권건)을 전별하는 시의 서문送權叔强以書狀官赴京詩序_성종 12년 작성 추정_ 고전번역원의 김종태 역을 토대로 좀 다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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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틈 나는대로 용재 성현(1439~1504)의 문집이며를 통독하고, 실록 기록도 대조해보며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몇 달 전부터 성현의 "부휴자담론" 관련 논문을 준비중인데, "부휴자담론" 하나만 가지고 대충 눈에 밟히는 구절을 뽑아서 이리저리 의미를 뽑아내는 작업은 다 끝내두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영 하나마나한 이야기밖에 못 하는 거 같아서, 가능한 확신을 가지려면 다른 텍스트와 충분히 겹쳐읽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도 그러다 걸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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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해야 할 변수가 더 많지만, 적어도 조선 왕조 건국 후에, 명에 실제로 (여러 번) 다녀온 사람 치고. 그 나라의 '실제 모습'이 자신의 기대에 충족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대체로는 생소한 것에 대한 감탄에 이어, 그 구체적인 감상은 적당히 건조하게 뭉개놓지만, 그 감상을 디테일하게 꼭 남기는 경우엔, '기대에는 못 미치는 어떤 모습'에 대해서 코멘트를 조금씩이라도 남기는게 대부분이다(후마 스스무 선생의 논문에 소개된 조헌-허봉 케이스가 가장 극단적으로, 경우에 따라 '진짜 감상'과 '보고용 감상'을 분리하기까지 한다).
중국에 안 다녀와도 마찬가지다. 이미 최근의 많은 연구들에서 지적되다시피, "(관념상의)중화와 (현실 국가로서의)중국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은 조명관계의 초장부터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진지한 연구자들 중에서, 유학자들의 '중화'에 대한 지향을 동시기 중국으로의 변화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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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시나 헷갈리는 것은, 성현과 같은 저런 발언이다. 일단 성현 본인부터가 중국을 한번은 다녀왔던 사람인데, 그 성현에게 있어서 공간으로서의 '중국'은, 어찌되었건 스스로가 늘 손에 쥐고 읽어왔던 고전과 분리된 관념의 공간이 아니다. 마치 현대의 역사 교육자들이 '답사'를 강조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로, 성현은 고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실제로 가보고, 보다 정확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성현에게는 '중국=중화‘의 등식은 성립되지 않을지라도, 중국과 중화가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게 된다.(좀 더 치사하게 말하자면, 현실 중국인보다 동쪽의 조선인이 중화에 더 근접하는 것이 대단히 많이 불리한 일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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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가지고있는 궁금증은, 그렇다면 왜들 그렇게 '실망'들을 하느냐는 것이다. 중국과 중화는 다르지만, 중국이 그래도 중화에 근접할만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는 지점까지 생각이 다다랐다면, '현실의 중국에서 그 중화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자족하면 될텐데, (물론 성현 당대의 기록은 많지 않지만) 다들 그렇게도 끝없이 기대하고 또 실망하는 일을 계속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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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빤한 결론이지만, 역시나 조선 사람들의 시선이 (심지어 '중국땅을 밟아봐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조차도) '실제 중국'을 완전히 직면하고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범범하게 말해, '중국'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정치/사회/학문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탈출구로서, 그리고 그 해결에 힘쓰는 스스로의 분투에 정치적 권위를 부여하는 원천으로서 존재할 뿐, 정말로 명나라/명나라 사람/명나라 땅에 대한 리얼리티가 관건이었는지는 뜨뜻미지근하게 느끼고 있는것 아니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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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는 실망에도 '기대'를 끝내지 못하는 마음을 그 이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