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관련 잡담

'한국사와 이론' 관련 주저리.

평시(lazyreader) 2023. 8. 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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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한국사학자들이 '이론을 모른다'는 핀잔을 듣는 것도 이젠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솔직히 대부분은 다 공감하는 문제제기지만, 개인적으론 그 찬반과 별도로 그 말이 (나를 포함한) 한국사 전공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오해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좀 있다. 그에 대해 내 스스로부터가 깝깝함을 느껴 이런저런 메모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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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생각에, 적어도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있어) '이론을 안다/모른다'고 하면, 세 가지 정도에서 문제시되고, 순응/부정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 어떤 권위 있는 이론서를 세미나 등을 통해 열심히 읽었느냐,
ⓑ 이를 논문 초장에 연구 가치를 설명하는 란에다가, "본 연구는 이러저러한 관점과도 부합한다." 식으로 써 붙여 두었느냐,
ⓒ 더 신랄하게 말해, 서론 후반부 <연구 방법> 항목 쯤에다가 각주로 그러한 권위있는 해외 문건들을 많이 달아 두었느냐...
... 물론 셋 모두가 나름대로 '이론을 소비하고 또 지향하는 방법'임은 분명하고, 동시에 앞으로 후술할 '이론화의 조건'을 본격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거 쳐가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재 국내 대학에서, 일반적인 국사학의 학제상 훈련을 받은 (나 같은) 분들이 (내가 그러고 있듯) 자주 놓치게되는 부분은  ⓐ~ⓒ가 아닌 딴 부분에 있다.. 그 점이 문제라고 생각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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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사 전공자들 이론 잘 모른다' 손가락질하는 이야기도 정말 짧게 쳐도 수십년 째 나오던 얘기다..
그에 대해서 꽤 오랜시간, 그 세대의 기성-원로 학자군에서는 '이론을 추수하지 않는 게 한국사 전공의 정체성'이라고 반발하고, 그 와중에 그 세대의 주니어 연구자들은 몰래몰래-각자 모여(?) 연구서 열심히 읽어나가고.. 이런 역사의 반복도... 적어도 내가 증언으로, 그리고 여러 '방법적 시론'형태의 글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바.. 거의 수십년째 반복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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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이쯤되면 좀 가슴을 펴도(?)좋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의 의미에서의 '이론 공부'는 (쌩쌩한 업데이트가 느릴 뿐/그리고 한국어 번역에 의존할 뿐) 국내 연구자들이 안 보는게 아니다. 그냥 티를 안(못) 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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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럼에도, 그로인해 한국사 전공자들이 '이론에 무심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도의 이야기로 이론의 문제를 '퉁 치고 넘어가느라' 정말로 이론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외국인 이론가들 책을 많이 읽었냐는 것도 모두 부차적인 문제다. 그냥 여러 (정말 훌륭하신 많은 선학 선후배들이 아닌, 나 같은 고만고만한 필부 수준의) 한국사 연구자들 자신들이 아래와 같은 '초보적인'문제에 관심들이 너무 없다는게 문제다. 
모두 나 같은 필부도 다 아는, 짧게 말해 '서론-연구사 정리를 제대로 좀 하고, 논지를 좀 일관되게 가져가라'는 뜻으로도 요약가능한 문제들이다. 그래도 자세히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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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연구는, 좋든 싫든 '시대'에 대한 거시적 전망을 해당 장르의 공통된 목표로 삼고 있고, 그 만큼 이를 다루어 온 종래 전망에 대한 비평적인 아이디어를 (계승을 택하든, 수정 보완을 택하든)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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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 제기된 주장(서사)은, 필연적으로 선대의 거시적 전망/미시적 관찰에 대한 일부분의 계승, 그리고 그 반대편에 대한 반대를 내포하게 된다. 
만일 계승을 표방하고(+그럼에도 A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고 덧붙이며 그러니 A로 논문을 쓰겠다며) 끝낸 소박한 경우라고 해도, 그 계승 대상인 선행자가 반대한 전망을 함께 반대하겠다는 입장이 당연히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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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우에 따라 '절충'을 택할 수도 있다. 이제 그럴 때는, 종래의 '절충되지 않았던 결과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몇배는 더 까다로운 비평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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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국 서론에서의 관점 정리든, 본문 서술상의 상세한 서사 제시든 간에, '하나를 주장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하나를 주장하지 않는다(혹 반대한다)'는 것임을 반드시 상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냥 자료상 나오는 이런저런 성격의 사안들을 모두 다 노출하고, '복합적 현상' 쯤으로 뭉개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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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이걸 잘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고, 나도 내가 쓴 논문들 보면 아주 화딱질이나 속이 다 뒤집어질 지경인데..
앞서 1)~4)부터가 별로 선행되지 않은 채, '이것저것', 양립불가능한 사안, 양립불가능한 설명들을 모조리 집어넣어둔 채,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다'고 마무리하고...결정적인 견해를 밝혀야 할 순간조차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모두 다 중요한 이야기들이다'쯤으로 뭉개놓는 일들이, 멀리 볼 것 없이 당장 내가 쓴 논문들조차도 썩 자유롭지가 못한 실정이니...
이게 반복되는 상황에서 '이론'이 ⓐ~ⓒ의 의미로 열심히 소비되어본들 무슨 소용인가 싶고.. 한 1년 전쯤에 새로 배운 단어로, 결국 Name-dropping 이 어디 별거냐 싶기까지 한 기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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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나온 내 박사논문에 연계된 후속/보완 논문 투고를 준비하다보니, 내가 봐도 내가 쓴 글들이 너무 깝깝하기 이를 데 없어서, (이미 잘 하고 계시는 수많은 분들이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은 좀 열심히 잘 좀 해야하지 않겠냐. 싶은 마음에 주절주절 길게도 메모를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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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들께 여러 차례 말씀을 드리게 되어, 본문 아래에 추신을 달아두자면.
 
'거시 전망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한다'는 것은, 그 전망이 '참신성'이 있느냐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정말로 딱히 새로운 의견이 없어도 좋다. 스스로가 "나는 우리 업계에서 통용되던 관습을 계승하여, 이를 확대재생산 하고자 하는 입장이다"라고, 다른 방향에서 스스로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구설의 계승-지지 또한 (명확하게 서 있기만 하다면) 훌륭한 '이론적 입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록 신선함이 부족한 게 아쉬울지언정, 구설을 '명시적으로', 합리적 근거에 입각해 일관된 논리로 지지하는 쪽이....
오히려 내 관점에서는.. 스스로는 (자신의 전망은 커녕) '구설 지지조차도' 할 생각 없이... 구설 및 이를 지지하는 행위를 덮어놓고 깎아내리는 법만 아시는 경우보다는... 학문적으로 명확히 더 건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