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적 작업이란 무엇인가.
몇년 전 세미나 쉬는시간 쯤인가 나눈 잡담이었는데, 겸사겸사 갈무리하는 차원에서..
--
가끔은 역사학자의 작업에 대해, 역사학자 자신들도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생각에, 역사학자는 '사실' 자체를 판정짓는 사람이 아니고, '주어진 자료 내에서 사실에 최대한 가까운 설득력있는 설명을 이어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
사실 우리는 '무엇이 사실일지' 그 자체를 알 수 없다. 남겨진 기록을 뛰어넘는 증거의 발견이 있다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현존하는 증거를 활용한 가장 무리 없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에 가깝다.
.
언뜻 당연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역사학에서의 '실증-논증'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세하게 말하면 아래와 같다.
.
1)우리가 하는 일은 '자료를 통해 도출된 여러 설명 간의 설득력있는 연결'일 뿐, 그것이 사실 그 자체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아주 신중히 해야 할 말이지만, 오만가지 위서 등이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학문적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위서들이 역사적 사실에 가까움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하기에, 현 시점으로서 이를 믿을 수 없다고 '판정'하고 그에 맞는 설명or서사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해, 김부식도 이유립도(!!!)도 고대의 공간에서 살아본 당사자 아니라는 점은 다르지 않으며, 기록물이 가진 착각-위조-개변의 여지 또한 모두에게 열려있는 상태다. 다만 왜 김부식은 되고 이유립은 안 되는가. 결국 다른 증거들과의 크로스체킹을 비롯한 다양한 검증의 결과, 지금으로선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음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건 농담인데, 상상컨대 중국 어드매서 '고대 한국의 대륙경략'을 입증하는 당대의 문자 물질 자료가, 종래 '한반도 사료'들과 모순된 부분까지 해결할 획기적인 서사까지 제공할만큼의 퀄리티로, 한반도 사료를 압살할 양으로 나온다면 그리고 그것이 모두 연대상 진품이 확실하다면, 하루아침에 고대의 대륙경략이 모두 믿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추세론 과거에도/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인게 그저 문제일 뿐... 하하;;
.
2) 그럼에도, 역사학에서 말하는 '다양한 해석가능성'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구 열어놓는다는 뜻이 아니다.
'주어진 자료 내에서 사실에 최대한 가까운 설득력있는 설명'을 만든다는 말에서 <최대한 가까운>이란 단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어쨌거나 다양한 반증가능성을 열어두는게 학문의 기본이라지만, 그렇다고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을 대충 던져보는게 의미있는 학문적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위에서 쓴 '농담'같이, 중국 어드매의 압도적인 출토자료가 나와버린다든지, 혹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들이 모조리 다 조작된 것일 수 있다든지. 등등의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열려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가능성들'이 그 자체로 학문적 논의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이는 그 논의를 제기하는 저자가 '이럴 수도 있는 가능성' 정도의 느슨한 이야기를 한번 던져보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이는 역사학 분야에서 최근 널리 받아들여지는 '다양한 해석가능성' 마저도, 최소한 연구자 자신으로서는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을 최대한 설득력있게 배제시켜낸 결과물로서의 연구를 성립시킨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확언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차원에서 쓰여지는(쓰여져야 할) 개념이라는 뜻이다.
.
간혹, '이런 증거로는 이렇게 볼 수도 있잖아, 아니란 증거 있냐'라고 매듭짓는 논문/발표를 접할 때,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