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기반 설명과 공감대 문제.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6월 28일 경술 2번째기사 1407년 명 영락(永樂)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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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에서 상소하였다
....지금 국가가 편안해도 위태한 것을 잊지 아니하여, 만일 예기치 못한 변고가 있으면 어떻게 이를 막을까 하여 오로지 창고를 충실히 채우고, 군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으로 급무를 삼아, 논밭을 재차 측량하여 그 잉여(剩餘)를 구하고, 넓게 둔전(屯田)을 열어서 세액을 늘리고, 연호(煙戶)의 쌀[米]과 양맥(兩麥)의 세까지도 모두 거두고 있으니, 이것이 비록 먼 곳을 바라본 것이긴 하나, 모두 눈앞의 해가 되어서 한갓 백성에게 원망을 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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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료는 나름 알려졌다면 잘 알려져있는 자료인데, 재정-환곡과 관련된 직접적인 연구 외에도, '민본사상을 근거로 한 국가 제도/부국강병책 비판'을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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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충 파악하기로, 위 자료를 '민본'과 결합해서 설명하는 두 세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다.
ⓐ 조선 초 위정자들이 그야말로 '민심'에 집중하였음을 강조하는 방식.. 여기서도 둘로 나뉘는데
-1 사상적 차원에서, 위정자들이 정말로 민심에 관심이 있었음을 주장하거나.
-2 당시의 사회경제적 여건상, 체제유지를 위해 피치못해 민심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하거나.
ⓑ 연호미법 등의 주도층을 공신 내지 고위 관료로 설정하고, 그 반대자 측을 연호미법 등으로 피해를 입게 될 향촌 기반 중소지주(향호)로 설정하여, 후자에 의한 전자 비판을 강조하는 방식.
(그 연장선에서, '주자의 향촌지배론'을 경유해 국가의 개입주의적 처사(?)에 대한 신유학자의 비판. 정도로도 느슨하게 연결짓는 기미를 보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이라는 인상까지는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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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서는 그거 대로 해야 할 말이 많은 문제다. 특히 ⓐ-1의 차원에서, 여말선초 유학자 관료들의 애민/민본적 발언들을 '선의'와 '기만' 중 어느쪽으로도 해석하지 않는 대안을 궁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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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의 차원이다. ⓑ의 설명방식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정치-사상의 문제도 실제로는 본인들의 경제적 이익 문제'라고 단순화 할 수 있는데, 사실 꼭 이 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설명법을 큰 틀에서 차용하고 있는 경우들은 특히 오래된 연구들일수록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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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를 차용한 연구들을 아무리 뜯어봐도 그 직접적인 근거란게 없다는 데 있다. 아주 느슨~하게, 상당히 많은 '보이지 않는 전제들'을 깔고 깔고 또 깔아둔 채로 '역시나 그런 거 아니겠나' 식으로 넘어가는 설명들이다. 그래서 그 논증을 인용하면서 써먹으려다가, 그 주장을 원사료 기반으로 재정리할 때 뒤통수(?)맞게 되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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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의 '경제 기반 설명'을 차용한 선학들의 연구가 순 엉터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학들의 시대에는 필요한 연구들이었음'을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개인적으로, '선학이 살았던 시대적 요구를 이해하자'는 방식의 훈훈한(?) 독해가, 스스로의 '실증적 연구태도'와 대비되는 맥락에서 활용되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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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같은 '선행 연구의 시대적 분위기'라고 하더라도, 상식 내지 공감대라는 말을 더 즐기는 편이다. 여기서 '공감대'란 특정한 정서 문제라기 보다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직관적인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일종의 상식적 전제같은 것을 말한다.(요새는 이런걸 '라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익숙치는 않은 단어다.)
여하간, ⓑ가 유행하던 시절, 이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야만스럽게 말하자면, '위정자의 발상-제안'은 '해당 개인이 속한 집단이 직접적으로 직면한 경제적 이해관계 그 자체'와 전혀 분리되지 않는다는게 상식 내지 공감대의 영역인지라, 별다른 구구절절한 근거 없이도 '그러려니' 서로서로 납득을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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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그런 공감대에서 벗어나게 된 지금 우리는 사료를, 나아가 과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가 문제다.
좀 솔직히 말하자면 '국고 충당을 민생 안정을 위해 양보하라'는 자료를 통해서 '공신 대지주와 중소지주 관료층의 대립'을 당연한 듯 읽어내는 설명들을 나로서 공감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자료에 나온 것만이 유일한 사실'인양 굴고 싶지도 않다. 경제 문제로부터 내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발상 저변을 경제문제로 환원시키고 싶지도 않다. 더 솔직하게는, '말할 수 없는'것을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게 결국엔 제 살 파먹기라는 생각을 안 하기도 어렵다. 헷갈린다 헷갈려...;;;
2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