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메모

와타나베 요시히로, "후한 유교국가의 성립"

평시(lazyreader) 2019. 1. 24. 19:28

"유교의 존재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천한다. 한대 이후의 유가가 본인이 생각하는 유교의 본질과 다르다고 하여 한대 이후의 유가가 유교를 이해했던 형태를 '몰이해'라고 비난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요컨대, 가지 노부유키처럼 현대의 시각에 기초한 일원론을 가지고는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유교의 존재형태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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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유교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다양한 요소를 지닌 유교는 역사적인 변천을 보인다. 그런데도 중국의 모든 시대에 공통된 유교상을 파악하려는 방법론을 취한다면, 그것은 '유교'와 '유학'을 다룬 여러 학설에 대한 검토에서 분명해졌듯이 정합적인 해석을 도출하지 못한 채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는 잠시 제쳐두고, 각각의 시대에 유교가 존재했던 방식을 해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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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요시히로(김용천 역), 2011, "후한 유교국가의 성립".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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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사서 살펴보고 있는 중. 뒷부분의 분석도 훌륭하지만, 정확히 이 부분에서 드러난 탁견에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번이고 거듭 끌어안고 있는 생각이지만, 어떤 사상이든 그 사상의 "진정한 모습"을 상정해두고 그 기준에 부합되는지 아닌지를 비교하는 해석법은 해당 시기의 사유방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방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굳이 이 책에서 주력하고 있는 변화축인 선진-전한-후한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신유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 사상사를 논할 때에도 '주자의 본래 생각', 즉 '정통 주자학'의 실체를 미리 규정해두고 그에 대한 비교를 행하는 접근법이 일반화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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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만 (누차 반복하듯이) 사상에서 '정통 지향'은 존재할 수 있어도 '정통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시대에 '정통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는 그들 나름의 시대적-지적 지향성'이 있을 뿐, 그 자체가 '정통 그 자체'와 지향-성격을 같이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까닭에 전술한 '사상사의 탈역사성'을 탈피하기 위해 사상사의 의미 자체를 정치-사회-경제적 배경으로 대치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만 이는 그 타당성과는 별도의 또 다른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정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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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하간 적어도 그 의미에서 본서는 다른 부분들도 뛰어나지만, 해당 부분을 포함한 "서론"만으로도 감동을 주기 충분한 책이다. '유교는 이런 것이다'라는 실체를 전제하지 않고 '유교가 시대에 어떻게 녹아들어가고, 어떻게 이해되는가'를 규명하는 과정이야말로 '그들의 유교'를 설명하고, 나아가 이러한 각 시대에 퍼져있는 '그들'의 입장들을 모아 '유교'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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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약간의 궁금한 점은 남는다. 굉장히 러프한 궁금증인데, "그렇다면 과연 '해당 시대 속에서, 다른 사유방법과 구분된 유교만의 특성'이란 무엇일까?"
통 우리가 '유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a) 공맹이 중시한 경전에 대한 숭배 (b) 인간 공자-맹자(문하)에 대한 존중-계승의식, (c) 공자-맹자의 메시지에 대한 내재화. 세 가지 의미를 담아 이루곤 한다. 여기서 a,b는 제법 명확하게 드러난다. '내가 공자를(혹은 그 경전을) 존중한다' 혹은 '내가 유학자다'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기반으로 한다. 
a와 b는 선명하지만 c가 항상 문제다. '공자의 본뜻'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적으로 의미를 달리하는 역사적 해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한 (예컨대 법가도 아니고 도가도 아니고 황로도 아닌)'유교국가'의 맥락은 과연 어떤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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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자는 나름대로의 '유교국가(=유교의 국교화)'의 기준을 4가지로 제시하고 있고, 이것이 만족하는 것은 (전한이 아니라) 후한대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a) 사상내용으로서의 체제유교의 성립

(b) 제도적인 유교 일존체제의 확립

(c) 유교의 중앙 지방 관료층으로의 침투와 수용

(d) 유교적 지배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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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허나, '유교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달리하는 것'이라면, 소위 '유교국가'의 기준을 설정할 때의 '유교' 마저도 희미해지게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동시에, 저 4)의 기준선을 넘어선 국가들을 '유교국가'의 선에서 긍정한다면, 조선왕조로의 전환이든, 중국사로 치면 후한 이후의 수많은 학문적-정책적-사회적 변천들은 모두다 '유교국가'의 틀 속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에 불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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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고민은 남지만, 적어도 이 1~3 수준의 메시지까라도 깊이있게 다룰 수 있다면 그거대로 중요한 작업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2014.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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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강 이 때 했던 고민이 얼마 뒤 학위논문에까지 연결되었고, 나름대로 발버둥쳤던 인연(?)이 있던 독서였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관심의 끈을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고. 이 책도 이후로도 몇번이고 더 읽을 기회가 있었다.


2) 2018년에 봄에 세미나에서 Michael Loewe의 "Dong Zhongshu, a Confucian Heritage and the Chunqiu Fanlu"를 읽었었는데, 와타나베가 다룬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해당 문제('유교국가'의 기준은 후한이라는 점)을 다루고 있었다.

와타나베 선생의 책은 상대적으로 후한대 예제나, 경전주석의 전통, 백호관회의로 대표되는 후한 의례논쟁 등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로이 선생의 책은 (아무래도 '동중서' 연구니까) 전한대 동중서 '신화'에 대한 비판적 독해에 초점을 맞춘 점이 다르다. 하지만 결국 '유교국가'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는 점은 유사한 입각점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세미나 초입자 신분(?)이라 긴장하느라 말을 못했었는데, 지나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이야기를 해 볼걸 싶었기도 했다.


3) 이와 별도로 이 문제('한대 유교'의 대전환?)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는 책으로, 아사노 유이치의 "공자 신화"를 작년 하반기쯤 읽었었는데.. 이 책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2019. 1. 24